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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2

한국인 기마민족설의 원류 옛날 신문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인 기마민족 주장은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일본정복설에서 기원한다. 이전에는 없었다. 원래 일본 쪽에서 기마민족 일본정복설을 이야기 할 때 여기서 기마민족이란 다름 아닌 고구려계열을 가리킨다. 이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말과 기마에 관해서는 서기 5세기 보다 많이 올라가기 힘든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로 따라서 5세기 고분의 급변은 대륙의 기마민족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할 때는 사실 그 "기마민족"이 유목민족이라던가 아니면 말을 옛날부터 타온 전통적 말사육 민족이라던가 이런 개념하고는 다른 것이다. 말이 없던 일본에 말타고 들어온 민족이다. 이러한 뜻이 되겠다. 그런데 이것이 처음 소개된 후 우리나라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한민족 전체가 기마민족이 되고.. 2024. 9. 15.
기마민족의 신화를 깨야 한반도 말의 역사가 보인다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한국에는 한민족이 기마민족이라는 신화 아닌 신화가 있다. 명백히 에가미 나미오의 주장 기마민족일본정복설에서 기원한 듯한 주장으로사실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본 시각은 20세기 이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20세기 들어서도 에가미 나미오 주장이 나온 후 돌연 한국인을 기마민족의 후예로 보는 시각이 유행하기 시작했지 그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이 블로그에도 썼던 것처럼 한국에서 말의 도입의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매우 늦다. 일단 말의 사육 자체가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서 시작된 데다가현재까지 확인된 말의 유존체도 중국보다 시기가 많이 늦다. 일본의 경우 서기 5세기까지도 말의 존재가 잘 확인되지 않는데 일본과 같은 계열의 도작문명의 상류에 해당하는 한국의 경우도 청동기시.. 2024. 9. 15.
조선후기: 한국에는 보가 가득했다 사대강 때 하도 수중보가 유명해져서 보[洑 혹은 湺]라는 것이 사대강 이전에는 없었고 사대강 때 비로소 생겨나 수질 오염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잘못된 지식이다. 전술한 글에서와 같이 조선후기 들어 17세기가 되면전국적으로 개간 열풍이 불고 수리시설이 폭증하여 이전까지 보편화하지 않은 이앙법이 비로소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 한반도 전역에 폭증한 것이 바로 보다. 물론 사대강 때처럼 콘크리트 수중보가 아니라 돌과 나무로 엮은 허술한 보라 대개 다음번 큰 홍수가 나면 다 떠내려가고 새로 만들어야 했던 것으로 안다. 중요한 것은 이 보가 전국적으로 폭증하여 논 물을 이 보로 대며 개간과 이앙에 혁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후기 논문만 읽어봐도 이미 그 시대에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 보가 없는.. 2024. 9. 14.
한반도에서 왔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야요이인이 외부에서 도래했다는 설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설에 대해 부정하는 시각도 많았다. 야요이인과 조몬인은 머리뼈 형태가 분명히 다르지만 이건 식생활 등 환경적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 후에 이것이 부정되면서 현대일본인은 외래계인 야요이인과 재래계인 조몬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소위 이중구조론이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때 나온 새로운 주장이 외래계는 맞지만 그럼 어디서 왔느냐는 문제였다. 대부분은 한반도를 지목했지만일부는 벼농사와 함께 양자강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주장도 최근에는 많이 불식되어 적어도 양자강을 지목하는 시각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주류의 위치에서는 이미 탈락한 상태라고 본다. 최근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한반도는 맞지만 도래인이 한국인 그 자체는 .. 2024. 9. 14.
조선후기: 저수지를 만들어 평야를 관개화했을까? 우리는 조선후기에 사방에 저수지를 만들어 평야지대까지 모두 관개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없는 게 아니고 이미 어느 정도 되어 있다. 대략 우리나라, 17세기 경부터 전국적으로 개간의 열풍이 불었는데 이때 수리시설이 꽤 많이 만들어졌다. 무슨 수리 시설이 만들어졌을까? 저수지? 17세기 우리나라 개간에 대한 연구를 보면, 몇 가지 점에서 놀란다. 첫째, 수리시설이 폭증한 곳이 의외로 경상도 지역이라는 점. 둘째, 폭증한 시설이 저수지가 아니라 보라는 점. 셋째, 우리나라 관개용수는 저수지로 논에 물댄 곳은 거의 없고 대부분 보로 물을 댔다는 점.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보 설치가 급증하면서 비로소 봄철 가뭄 문제를 극복하고 이앙법이 보편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4. 9. 14.
도작의 집중화가 일어난 곳: 한반도인가 일본열도인가 일본열도야요이시대에 도작은 한반도에서 넘어갔다. 이것은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일본열도 큐슈 북부에는 한반도에서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도작 유적들이 나오는데야요이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촌락들은 도작에의 의존도가 아주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반도의 도작은 잡곡과 함께 혼합농경의 형태로 한반도를 남하하였다. 그렇다면-. 도작이 다른 잡곡을 압도하여 도작에 의존도가 아주 높은 형태로 진화하는 현상은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일어났을까.도작에 아주 높은 정도로 의존하는 촌락은한반도 남부에서 생겨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생겨났을까.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은한반도 남부에서 이미 쌀농사를 주력으로 채택하였을까 아니면, 일본열도를 건너간 다음 쌀농사를 다른 잡곡보다 훨씬 많이 ..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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