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여말선초 그들은 왜 땅이 필요했는가

by 초야잠필 2024. 9. 20.
반응형

여말선초

조선 건국세력의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우리는, 

고려말에는 송곳하나 꽂을 곳이 없이 권문세가의 농장이

백성을 침탈하여 고통받고 있어

사전을 혁파하여 권문세가의 땅을 몰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전법체제를 출범시켰다고 하고, 

이것을 일종의 혁명이자 역사적 순리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송곳 하나 꽂을 수 없는 겸병된 농장을 일본에서는 

동시기에 장원이라 불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말하는 성리학자의 혁명없이도 

장원은 잘만 성장하고 발전하여 무가정권을 출범시키고

그것이 에도막부까지 발전하여 

조닌문화, 거대한 화폐경제를 출현시키고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여말선초의 "농장"과 "겸병"은 
정말 사회악이었을까? 

군역을 도피한다고 공격당하여

절집과 인근의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대부들의 종 아닌 종으로 전락한 불교의 퇴락은

과연 "정의의 심판"이었을까? 

20세기 초 조선의 몰락은 사실 바로 이 여말선초의 

사전혁파에서 이미 5백년 전에 준비된 것인지도 모른다. 
 

 
*** edo]itor's note *** 
 
여말선초 조선 건국 주축세력이 신왕조 개창 혁명 명분으로 세운 것이 저것이었으니,

불교로 국한하면 결국 절집이 세금을 포탈하고 백성들 도피처가 됨으로써 노동력과 군사력을 무력화한다는 논리였다.

물론 그런 측면이 왜 없겠는가?

종교시설 과세 문제는 요즘 한국사회 화두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데 헐벗고 주리 백성이 갈 곳이 없을 때, 그 안식처 혹은 마지막 피난처, 곧 어사일럼으로서의 불교의 기능을 적극 평가해야지 않겠는가? 

조선왕조 건국은 주리고 벗은 백성의 마지막 안식처를 빼앗아버렸다. 

그렇게 빼앗은 그들을 그렇게 싫어서 도망한 그곳으로 권력은 도로 갖다 놓았다.

노동력을 징발하고 군대 총알받이로 썼으며, 세금은 그들만이 내게 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