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5 일본이 조선에 소학교를 증설해야 했던 이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측에서 항상 들고 나오는 것이 조선에 소학교가 일제시대에 증설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면 중학교는? 고등학교는? 대학교는? 이란 질문에 답을 낼 수가 없다. 일본은 조선땅에 중학교 대신 고등보통학교를, 고등학교는 0개, 대학교는 경성제대 빼고는 전부 전문학교에 묶어 놨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대로면 조선인은 고등교육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위학교에 진학이 어려워진다. 단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진학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은 원칙적으로 고등학교, 전문학교, 대학예과 졸업생 모두 진학이 가능했지만, 대학에 들어갈 때 우선순위는 고등학교와 대학예과에 우선권이 있고, 전문학교는 후순위였다. 한국에서.. 2023. 5. 6. 아키야마 요시후루 秋山好古 (1859~1930): (2) 전술한 아키야마 요시후루의 프로필에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아키야마는 육사 졸업때 까지 정규교육은 거의 날림으로 다녔다. 국가가 육사 졸업때까지 이런 날림교육에도 졸업장을 줄 수 있도록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당시엔 다 이랬다. (2) 아키야마는 자기 돈 땡전 한푼 안내고 유학까지 마쳤다. 그는 국가의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국가의 도움에 러일전쟁의 기병전 승리로 갚았다. (3) 아키야마는 메이지 유신 당시, 신정부군에 맞서 막부편에 섰던 번의 최하급 무사였다. 그런데도 메이지 유신 기간 내내 승승장구하여 육군의 최고직위인 대장까지 올랐다. 군부는 사쓰마 죠슈 출신이 독점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인이라면" 능력만 있다면 승진에 있어 유리천장은 거의.. 2023. 5. 6. 아키야마 요시후루 秋山好古 (1859~1930): (1) 흔히 일제시대를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 시대에 한국에 소학교가 몇 개가 지어졌다던가, 연평균 성장률이 몇 프로였다던가, 이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식민지시대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한국이 독자적 근대화를 하고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드리겠다. 아래는 일본 메이지시대 군인 아키야마 요시후루 秋山好古이다. 시바료타로의 "언덕위의 구름"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연보를 아래에 써 본다. 安政6年(1859年)1月7日(1859年2月9日): 시코쿠 마쓰야마번의 무사계급 3남으로 출생. 이 집안은 아시가루보다 겨우 한단계 높은 최하급 무사집안이었지만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였다. 藩校인 明教館에 입학하여 배웠고, 목욕탕인부로 일했다. 明治8年.. 2023. 5. 6. 식민지 청년의 비애 흔히 식민지 청년의 비애라는 말을 쓴다. 일제시대를 수식할 때 흔히 들어가는 말이다. 식민지 청년의 비애라. 말은 그럴 듯한데 구체적으로 뭐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 실생활에서 와닿지 않는 이야기란 아무 소용도 없다. 식민지 청년의 비애라는것이 뭔가 하면, 결국 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왜 이 이상 출세를 못하냐. 이게 식민지 청년의 비애다. 일제시대 조선인은 똑똑 한 사람일수록 민족 차별을 많이 느낄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병도를 봐라. 그는 한 나라의 역사학계를 이끌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해방 이전 그의 신분은 학사출신 시간강사였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망국을 가장 슬퍼했을 사람들은 누구일까? 농민?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농지개혁이 있기 점에는 농민의 생활수준, 경제수준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조선.. 2023. 5. 5. 고종은 잘못이 없다 왜냐 원래 저 시대의 귀족, 고급관리, 사대부란 다 바보기 때문이다. 고종은 그냥 자기 하던 수준대로 한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런 바보가 지 맘대로 하게 내버려운 쪽에 책임이 있을 뿐. 일본의 경우 막말을 묘사한 글을 보면, 천황까지야 대 놓고 바보라고 하지 못하겠지만 기타 등등 공경과 고급무사 (우리로 치면 사대부 반가 쯤 되겠다) 는 죄다 바보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러면 막말 유신기의 주체는 누구인가. 일본의 경우, 막말유신기-메이지시대의 주체는 바로 하급무사들이다. 상급무사들에 의해 저 놈들 사무라이는 맞냐고 천대받지만 농민들에게는 그래도 사무라이는 사무라이라는 평을 듣고, 자신들도 사무라이라는 강렬한 의식을 가지고 있고, 공경대부는 죄다 바보라고 우습게 볼 수 있었던.. 2023. 5. 5. 수나라 군은 왜 무너졌는가 아래 김단장께서 쓰신 글을 보고 생각나는 바 있어 글을 더한다. 고구려, 신라군이 삼국전쟁기에도 1-3만 정도 동원하는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며 이것이 최대치였다는 이야기-.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써 보고자 한다. 수나라군이 고구려를 쳐들어갔을 때 호왈 113만인가를 이야기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당시 수나라 군이 패망한 것은 100만 대군이 아닐지라도 저 군대 규모 때문에 패망했을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군대가 움직이면 그 군대 하나 보내고 끝이 아니다. 먹여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먹이기 위해 움직이는 군대는 그 자체 또 그냥 먹지도 않고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다. 식량을 수송하는 군대 자체도 또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통시대의 국가-사회수준에 따라 움직일 수 .. 2023. 5. 5. 이전 1 ··· 231 232 233 234 235 236 237 ··· 3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