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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본이 조선에 소학교를 증설해야 했던 이유

by 초야잠필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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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측에서 항상 들고 나오는 것이 조선에 소학교가 일제시대에 증설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면 중학교는? 고등학교는? 대학교는? 이란 질문에 답을 낼 수가 없다. 

일본은 조선땅에 중학교 대신 고등보통학교를, 고등학교는 0개, 대학교는 경성제대 빼고는 전부 전문학교에 묶어 놨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대로면 조선인은 고등교육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위학교에 진학이 어려워진다. 

단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진학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은 원칙적으로 고등학교, 전문학교, 대학예과 졸업생 모두 진학이 가능했지만, 대학에 들어갈 때 우선순위는 고등학교와 대학예과에 우선권이 있고, 전문학교는 후순위였다. 

한국에서 보전, 연전을 마치고 일본 유학을 간 경우 바로 대학으로 못 들어가고 대학전문부에 머물다 입학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이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식민지 기간동안 조선땅에서 중학교 이상 교육이 제도적으로 매우 힘들게 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소학교 증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소학교도 못 마친 상황에서는 공장 잡역도 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글자를 읽을 줄 알아야 일을 시킬 거 아닌가?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 일본은 이전의 소규모 기업을 탈피하여 중화학공업과 대규모 공장을 기반한 뒤늦은 산업혁명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당연히 공장노동자도 급증하였고, 이들이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교육은 시켜서 내보내야 했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소학교 증설의 정체이다.

중학교 이상 교육이 제도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소학교 증설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상급학교 진학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이러한 소학교 증설은 조선인의 근대화와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다. 

1950년 해방이후 남한에 학교가 증설되는 과정을 보면, 국민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상급학교의 숫자를 무리하게까지 증설하면서 유지하려 했던 것은 결국 대졸자가 나와야 근대화에 필요한 고급인력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제시대 소학교 증설의 통계는 보여줘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의 수는 절대로 못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통계는 이렇게 쓰는 게 아니다. 


경성제대 예과건물. 조선땅에 있는 유일한 구제 고등학교 기관이었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1945년 8월 현재, 대학에 진학가능한 고등학교는 일본 전역에 관립, 공립, 사립 합해서 총 38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대학예과를 뺀 통계이다. 대학예과가 포함되면 더 많다). 조선땅에는 동급 학교가 딱 하나였다. 경성제대 예과. 연전과 보전은 졸업하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급을 인정받지만 대학 입학 때는 고등학교나 대학예과 졸업생의 후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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