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식민지 청년의 비애라는 말을 쓴다.
일제시대를 수식할 때 흔히 들어가는 말이다.
식민지 청년의 비애라. 말은 그럴 듯한데 구체적으로 뭐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
실생활에서 와닿지 않는 이야기란 아무 소용도 없다.
식민지 청년의 비애라는것이 뭔가 하면,
결국 내가 이렇게 똑똑한데 왜 이 이상 출세를 못하냐. 이게 식민지 청년의 비애다.
일제시대 조선인은 똑똑 한 사람일수록 민족 차별을 많이 느낄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병도를 봐라. 그는 한 나라의 역사학계를 이끌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해방 이전 그의 신분은 학사출신 시간강사였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망국을 가장 슬퍼했을 사람들은 누구일까?
농민?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농지개혁이 있기 점에는 농민의 생활수준, 경제수준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나 그게 그거였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소작농이었고 여전히 못살았으니까.
나라가 망해도 농민들은 별 차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조선이 망함으로써 가장 타격을 받았을 사람들은 조선의 청년관리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조선이 망하는 바람에 사실상 출세길이 막혔고, 실제로 대한제국 공무원의 대부분은 하위직을 전전하다 인생을 마쳤다.
해방되었을 때 누가 가장 좋아했을까?
일제시대의 관료체계의 말단을 전전하던 조선인 관료들 (이들은 대부분 지금 친일세력으로 분류된다)과 군인들은 해방을 슬퍼했을까?
천만에.
왜 슬퍼하는가? 자고 일어나 보니 자기 위에 있던 일본인 상관들이 몽땅 사라졌는데?
어제까지 시간강사를 전전하다가 오늘 갑자기 국립대학 학과장이 될 판인데?
이 때문에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 가장 좋아 날뛸 사람들은 면사무소의 조선인 관리라는 말이다.
이들은 앞으로 군수가 될지 국회의원이 될지 알수가 없으니.
역사라는 것은 상식에 기반해서 진실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고 이것은 일제시대도 마찬가지다.
농민들은 대한제국이 망함으로써 식민지 질곡에 빠진 것도 아니고,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이들이 진정으로 달라진것은 "농지개혁"이 실시된 이후였다.
이때부터야 말로 이들이 진정으로 해방되어 그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60-80년대 우리나라 우골탑은 그렇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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