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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41

사무라이를 잡아다 월급장이를 만들어 놓은 에도막부 조선왕조와 에도막부의 가장 큰 차이를 들라면 필자는 행정체계를 꼽고 싶다. 조선왕조 행정조직에서 사대부들이 가는 자리는 소위 청요직이라 해서 따로 떼어두고 나머지 실무직은 제대로 된 사대부들은 거의 취임하지 않았다. 조선왕조 행정조직에서 고질 병폐라 할 관리가 행정을 모르는 실태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지방행정의 경우는 더욱 문제라 실무를 담당해야 할 향리들은 아예 월급이 없었다. 말하자면 자발적 노동봉사를 하라 그 소린데, 월급도 없는 향리가 선택할 길은 당연히 두 가지다. 하나는 알아서 떼먹거나 다른 하나는 무료봉사인 행정을 대충 해치우고 따로 생업을 찾아 먹고 살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는 소위 막번체제라 하는데 중앙은 막부, 지방은 각 번이 나누어 지배했다. 이 시대 .. 2022. 11. 18.
문외한이 보는 석촌동 발굴의 의문 며칠전 김단장께서 올린 석촌동 발굴 뉴스를 보고 드는 소박한 질문이다. 1. 석촌동 적석총 아래에서 목관묘와 목곽묘가 나왔고 양자간에 단절성이 보인다면 풍납토성은 적석총의 주인공이 만든것인가 목관묘-목곽묘의 주인공이 만든것인가? 2. 석촌동 적석총은 아무리 봐도 고구려 적석총 중에서는 시대가 내려오는 것인데 백제의 무덤이 맞기는 맞는가? 혹 광개토왕때 남하한 고구려가 남긴것은 아닌가? 석촌동 적석총은 아차산 보루와는 관련이 없는가? 3. 목관묘-목곽묘가 적석총보다 더 시대가 올라간다면 이른시기에 압록강 유역과 한강 사이의 문화적 동질성이라는게 끊어지게 되는것 같은데, 고구려에서 갈려나왔다는 백제의 건국세력은 그러면 어디서 찾아야 하나? 4.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백제"가 이번에 나왔다는 목관묘-목곽묘.. 2022. 11. 16.
문화훈장을 갈아 엎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자신이 있는 나라들은 어디나 각 분야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명예로운 시상을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문화훈장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 우리나라 문화훈장을 갈아 엎어야 한다. 우리나라 문화훈장은 금관, 은관, 보관 문화훈장 등등 등급이 나뉘어 있는데 이 중 금관훈장이 가장 위이다. 재미있는 건 지금까지 대중문화인이 금관문화훈장을 탄적이 없었다. 최초로 탄 사람이 얼마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윤여정 씨였다. 이 양반이 최초로 그 이전에는 소위 말하는 시인묵객 가객들이 금관문화훈장을 탔다. 우리나라는 문화에도 골품제가 있는 셈이다. 물론 필자가 과문해서인지, 아마도 무식해서 그렇겠지만 금관문화훈장 수상자 중에는 그가 뭘 했는지 내가 알 만한 분이 없었다. 이름을 들어본 .. 2022. 11. 16.
통일벼는 왜 냉해를 자주 입었는가 앞서 필자는 한국은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으로 이렇게 높은 위도까지 벼농사가 끌어올려지면서 촘촘한 시간표에 따라 부지런히 농사 짓고 하늘의 비를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초조한 농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각설하고-.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혼분식장려에 도시락에는 반드시 잡곡을 30프로 이상 섞어야 했다. 학교에서 도시락 뚜겅을 열어 잡곡 퍼센트를 선생님들께서 체크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는 왜인지 콩은 잡곡으로치지 않았다. 아마도 보리를 넣으라는 것 같은데, 콩이나 보리나 어차피 잡곡인데 야단을 맞고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이 당시 통일벼라는 것이 있었다. 내 나이 또래는 다 알 것이다. 이 통일벼는 못먹고 산 당시에 배 부르게 한 번 먹어보자는 시대정신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수 있는데, 밥맛이 .. 2022. 11. 14.
"한국에서의 도작"은 고도의 기술이었다 앞서 도작농경이 가능한 정도의 기술 수준이라면 양잠도 당연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썼었다. 도작농경 자체도 물론 대단한 수준의 농업 기술이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도작"이야 말로 매우 복잡해 질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한국은 도작이 제대로 수행되기에는 위도가 너무 높다. 원래 쌀은 이렇게 높은 위도에서 재배되는 것이 아니었다. 열대-아열대에서 자라던 녀석을 북쪽으로 끌어올리다 보니 필요한 일조량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문에 한국의 벼농사는 조금만 시작이 늦거나 종료가 조금만 지체되어도 한해 농사를 망치는 극한의 타임테이블에 따라 움직이는 빡빡한 농사가 되어버린것이다 (원래 쌀농사라는 것이 이렇게 빡빡한것이 아니라는 것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보면 알수 있.. 2022. 11. 13.
가축 사육은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최근에도 소파동 돼지파동 등이 있어 가축 값이 폭락하는 경우가 있지만,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우리 조상이라 해서 가축은 닥치고 사육하면 될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던것 같다. 쌀농사가 한반도로 도입된 후에도 상당기간 가축사육이 이 땅에서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다. 우리에게 쌀농사를 전해준 중국 화북지역은 이미 신석기시대에 가축사육이 정착한 모습을 보여 그 기술적 전통이 만만치 않은 상태였다. 왜 농경+가축사육의 복합체에서 하필이면 벼농사만 홀랑 뽑아 들어왔을까? 그리고 왜 그 긴 기간 가축은 제대로 도입되지 못했을까?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첫째. 굳이 단백질원 공급을 위해서라면 야생동물 사냥감이 지천에 널려있었다는 점. 닭대신 꿩(꿩 대신 닭인가?) 이라..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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