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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41

신라김씨 후예들의 선택 신라김씨라고 하면 신라왕실의 후예로 여러 왕의 후손을 자처하는 모든 성의 집합체다. 경주김씨가 가장 대표적이겠지만, 광산김씨, 전주김씨, 강릉김씨 등 다른 본관의 성들도 포함하며 심지어는 다른 성인 안동권씨 등도 조금 무리하여 본다면 포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혈족들의 주장대로 이들이 정말로 신라김씨의 후예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와 겐지의 후예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프로파겐다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또 남들이 사실이야 어쨌건 그렇게 믿는 척이라도 해주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후삼국시대, 신라김씨의 동향을 생각해 보면 이들의 본향이라 할 신라왕실의 움직임에 절대적으로 동조하고 있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 2022. 11. 20.
무가정권 출범 전야 : 자칭 천황 후손의 현실 앞에서 세이와겐지清和源氏와 간무헤이시桓武平氏가 천황가 지손으로 신적강하臣籍降下로 성립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신적 강하 후에는 이들이 고귀한 귀족신분을 유지한 것이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가로 전업했다. 전통의 귀족인 공가公家 아래서 요즘으로 친다면 어깨 역할을 하며 공가 귀족들을 무력으로 뒷받침하며 생존한 것이다. 이처럼 공가 귀족들을 칼과 활로 떠받치며 시중들던 사람들을 사무라이라 하는데 이 계급이 처음 출현했을 때는 귀족들로 부터 천대받던 계급이었다. 아무리 조상이 천황이라 해도 무가정권 출범 전야인 12세기가 되면 이미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시 집안은 귀족이 아니라 사무라이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이 사무라이의 우두머리를 무가武家의 동량棟梁이라 불렀다.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시는 .. 2022. 11. 20.
무열왕과 경순왕의 후손이 싸운 격인 겐페이전쟁源平合戦 겐페이전쟁源平合戦이라는 것이 무사들끼리 싸움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 전쟁을 보다 간단히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앞서 세이와겐지가 세이와 천황 清和天皇의 후예로 천황가에서 갈려나왔다고 했지만 겐페이전쟁源平合戦에서 겐지와 싸우게 되는 헤이지 역시 桓武平氏라해서 이 쪽은 8세기대 천황인 桓武天皇 후예이다. 이 쪽도 황실에서 갈려 나오면서 신적강하臣籍降下되면서 平氏가 된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신라 김씨 후예라고 해서 모두 같은 계통은 아니고 원성왕 후손, 경순왕 후손, 무열왕 후손 등등이 있을 것이다. 이 중 무열왕 후손인 강릉김씨와 경주김씨 중 경순왕 후손들이 고려시대에 대판 붙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쟁 결과 경순왕 후손이 이겨 무열왕 후손이 멸족당한 전쟁, 그게 일본사의 .. 2022. 11. 20.
청화원씨清和源氏 대종중: 일본의 성씨를 이해하는 법 일본의 성씨제도는 한국과 엄청나게 다른 것 같지만 유심히 보면 이름을 붙이기 나름일뿐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일본에 세이와 겐지清和源氏라는 씨족이 있다. 56대 천황인 清和天皇 850-881 의 후손으로 무가정권에서 크게 번성한 씨족이다. 우리나라 왕가에서 대군-군을 거쳐 사족으로 강하하듯이 일본은 천황가에서 분지하여 나온 종족들이 臣籍降下라고, 원래는 성이 없던 천황가에서 성을 받아 갈려 나오게 된다. 겐지가 바로 그런 종족으로 겐지 자체가 성립한 것이 9세기 말, 많은 지류 중에 가와치 겐지河内源氏가 성립한 것이 서기 11세기 초이니 우리나라 나말여초-고려초에 해당한다. 이 가와치겐지로 부터 가마쿠라 막부의 源頼朝 (1147-1199)가 나온다. 가마쿠라 막부 뒤를 이은 무로마치 막부, 아시카가씨.. 2022. 11. 19.
가렴주구苛斂誅求와 삼정三政의 문란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민란의 원인으로 가렴주구苛斂誅求와 삼정三政의 문란을 흔히 이야기한다. 가렴주구와 삼정의 문란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 안에 수많은 다른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의 결과 집합체가 가렴주구와 삼정의 문란이며 이 결과물에 반응한 것이 민란民亂일 뿐이다. 일본사에 수많은 잇키 (一揆, いっき)가 있었지만 잇키의 원인이 수탈이라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탈이 있으니 잇키가 있었겠지. 이건 말할 필요도 없다. 폭력이 있엇으니 싸움이 있었겠지. 이거야 말로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가렴주구와 삼정의 문란이라는 이 간단하기 짝이 없는 용어는 역사 교과서에는 올라서는 안 되는 단어이다. 교과서에는 가렴주구와 삼정의 문란의 이유가 올라와야지. 왜 가렴주구와 삼정의 문란이 나올수 밖에 없는지가 이야기 되어야지. 왜 아.. 2022. 11. 18.
2022년 12월: 연구실 새논문 소개 연구실 세 편의 논문이 이달 새로 출판된다. (1) 17세기 조선시대 선비의 얼굴복원 : 국과수 이원준 박사가 제 1저자. A portrait drawing of the 17th century Korean scholar based on craniofacial reconstruction - PubMed As a technique mainly hiring in forensic investigation field to identify the descents, craniofacial reconstruction (CFR) is also used in archaeology to create the faces from ancient or medieval human remains, when there is little..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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