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4 죽어도 노비 손에는 죽을 수 없다는 백제 명농왕明穠王 일본서기 흠명 15년 조에는 유명한 성왕이 승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왕이 아들 위덕왕을 찾아 가다 매복에 걸려 죽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 1. 고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법에는 맹약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라는 부분이 있다. 성왕이 맹약을 어겼다는 뜻일 터다. 무슨 맹약일까? 이미 앞에 한 번 쓴 바 있다. 백제는 신라와 공수동맹을 맺었지만 가야방면으로는 끊임없이 가야와 연계하여 신라를 견제하려 했다. 우리가 모르는 적대행위가 또 있었을 수 있다. 아무튼 문맥으로 보면, 적어도 신라로 보면 한강 탈취 명분은 "백제가 맹약을 어겼기 때문"인 셈이다. 그 명분 역시 모든 정치판 명분이 그러하듯 구실에 불과했겠지만. 2.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왕의 머리를 베.. 2022. 12. 15. 광개토왕 비문에 나온 고구려 기병과 왜병의 대결 동영상 아래 사진과 동영상은 신라성을 포위한 왜병을 고구려 기병이 공격하여 포위를 푸는 장면이다. 광개토왕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0년(400) 경자庚子에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男居城에서부터 신라성新羅城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왜군이 가득하였지만, 관군이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城이 곧 항복하였다. https://youtu.be/_6i56BRisgc 농담 삼아 써본 이야기인데-. 보다시피 이 장면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장면인데, 필자가 생각하는 광개토왕비문에 묘사된 당시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하여 링크해 둔다. 왜가 광개토왕비문에 묘사된 것처럼 신라 경내에 대거 .. 2022. 12. 14. 일본 무가武家 "나노리 名乗り"는 기원이 한반도인가 나노리 名乗り라는 일본 무가武家 전래의 전통이 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名乗り(なのり)とは、戦において武士が味方や敵に向かって自分の姓名・身分・家系などの素性、戦功、戦における自分の主張や正当性などを大声で告げること。武士の作法として、名乗りが行われている間に攻撃することは良しとされなかった。戦場では自分の勇名や戦功を喧伝するためなどに行われ、味方の士気を上げるためや相手方の士気を挫いたり挑発するためにも行なわれた。 간단히 말하자면 싸움 전에 상대편에 관등 성명을 대는 것이다. 나는 누구누구의 자손 누구인데 어쩌고.. 하는 것인데 이건 상대편 들으라고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편, 정확히는 자신에게 상을 내릴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상대편 성을 공격할 때 선착하면 마찬가지로 나노리를 한다. 내가 누군데 누구 성.. 2022. 12. 14. 사비시대의 물부씨物部氏 패밀리 앞에서 언급한 물부이세부근物部伊勢父根와 물부순物部珣은 백제와 관련이 깊은 왜계 인물들이지만, 이들 각자 한명씩 떼 놓고 보면 이들이 백제에 정주하며 백제왕에게 온전히 충성하며 산 일족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物部伊勢父根은 가야와 백제 일을 중재하는 데 잠깐 사서에 나오며, 物部珣은 백제 멸망 후 당에서 발견된 묘지명에 그와 흑치상지의 관계가 적혀 있을 뿐 그 이전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物部伊勢父根와 物部珣을 백제왕실에 충성한 왜계 백제관료 일족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 네 사람 때문이다. 물부마기모物部麻奇牟, 물부용가다物部用歌多, 물부가비物部哥非, 물부오物部烏 이 네 사람은 형제관계로 보이는데 일본 측 기록에는 "100% 백제왕의 신하"로 .. 2022. 12. 14. 흑치상지黑齒常之와 그의 사위 물부순物部珣 흑치상지라는 사람이 있다. 백제멸망 당시 부흥군을 이끈 사람으로 그 후 당에 항복하여 그곳에서도 활동한 사람이다. 흑치상지의 성 "흑치黑齒"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중국에서 발견된 그의 묘지명에는 百濟人也。其先出自扶余氏,封於黑齒,子孫因以為氏焉。라 되어 있어 흑치는 지명으로 보인다. 원래 부여씨였지만 갈려 나왔으니 일본에서 흔히 보이는 바대로 "창씨'를 한 셈이 되겠다. 사실 "창씨"의 전통은 일본보다 백제에서 먼저 보이는 것 같아 어쩌면 일본 창씨 전통의 기원은 백제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흑치"에 관련하여 제시된 바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에서는 귀족들이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풍습이 있어 심지어는 전국시대까지도 귀족 취향의 무사들은 이빨을 검게 물들이고 했다는데 실제.. 2022. 12. 13. 성왕은 진흥왕에게 "배신"당한 것이 아니다 성왕이 죽는 장면은 장렬하여 읽는 사람에게 비통함을 준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찾아보기 위해) 가다가 신라 매복에 걸려 승하하게 되었는데 그 장면은 사서에도 자세하니 여기 따로 쓰지는 않겠다. 성왕은 일본측 사료에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매우 명민한 명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왕의 불행이라면 불행은 당시 명군은 백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성왕은 흔히 진흥왕에게 "뒤통수를 맞아" 한강유역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측 사료를 읽어보면 그게 아니다. 아래는 흠명 5년 (544년) 기사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신라가 백제의 한강유역을 뺏어 영유한 것은 553년의 일이니 소위 나제동맹이 깨지기 11년 전의 일이다. 성명왕이 “임나국은 우리 백제와 예부터 지금까지 자제와 같이 되겠다고 약속하였다.. 2022. 12. 13. 이전 1 ··· 273 274 275 276 277 278 279 ··· 3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