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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3

대중문화의 영역인 사무라이 픽션 흔히 일본사회는 사무라이 문화-. 국가대표 스스로를 사무라이 블루라고 부르기도 하고, 태평양전쟁 때에는 말단 군졸까지도 야마토 다마시이, 사무라이 정신을 부르짖었지만, 사실 지금 일본인의 태반은 사무라이가 아니라농민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일본인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사무라이 이미지, 그리고 외국인들이 일본문화를 볼 때 갖는 사무라이에 대한 선입견도, 역사적 팩트라기 보다는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창조한 픽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라는 것, 전통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실제로는 관객이나 끌어보려고 영화나 가부키 판에 올려진 픽션과 과장들이 몇 세대만 내려가면 역사적 전통이 되어 사실인양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문화 한국의 전통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저런 의례를 조선시대에도 몇 번이나 했.. 2024. 8. 24.
필자의 새로운 프로젝트 소개 필자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 제목을 보면 무엇을 하는 것인가 궁금하시겠지만, 결국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 사이에 가장 핫 이슈의 하나인, 한반도 남부 고대 한국인의 일본 이주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히 이해가 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역사학, 고고학, 유전학, 인류학 등 관련 분야의 연구를 계속 파고들어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사실 필자의 연구 편력에 있어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오랫동안 교유해 온 고고학 전공자 분의 도움을 얻어학제간 연구의 형태로 이제 마침내 첫 발을 떼게 되었다. 이에 관련 연구성과를 앞으로 매년 2-3편은 보게 될 것이며필자 인생에서 완전히 절필하게 되는 날까지 이 연구는 계속 될 것이다.첫.. 2024. 8. 24.
이에야스의 아마겟돈 준비 (2) 다음으로 도쿠가와씨의 방비는-. 하타모토였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쇼군과 주종관계가 맺어진 상대는 각지에 분봉된 번주(다이묘)들도 있지만, 1만석이 안 되는 자들은 번에 분봉하지 않고 하타모토旗本라 불러 쇼군의 직속으로 삼았다. 아무리 큰 번의 번사라도 쇼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배신이므로 쇼군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지만, 하타모토는 아무리 석고가 낮아도 쇼군을 직접 배알할 수 있었다. 하타모토는 쇼군 집안의 가신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따라서 불과 몇천 석의 하타모토와 백만석의 거대 번의 번주는 대등한 관계로 서로를 "도노"라고 불러야했다. 하타모토는 유사시 동원령이 내려지면 그 종자들까지 합쳐서 병력이 대략 8만명 정도로 설계되어 있었다고 하므로 "하타모토 8만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24. 8. 24.
이에야스의 아마겟돈 준비 (1)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의 싸움, 오사카의 진을 거치며에도막부를 마침내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다만, 에도막부는 이 막부를 쓰러뜨릴 전쟁이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하고 그 최후의 전쟁, 반 에도막부 세력과의 아마겟돈 전쟁이 벌어질 시기에이를 성공적으로 진압할 수 있도록 막번체제를 설계하였다.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에 도전할 아마겟돈 전쟁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그 이야기를 좀 적어보겠다. 먼저 다이묘大名의 분봉. 에도시대 다이묘에는 세 종류가 있었다. 신판親藩, 후다이譜代, 도자마外樣 다이묘가 그것이다. 신판 다이묘는 도쿠가와 집안의 혈족이 영주인 번이다. 후다이 다이묘는 도쿠가와 집안이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이겨 천하를 손에 넣기 전부터 이에야스를 따라다니며 신종하던 집안이 영주인 번이다. 이 신판.. 2024. 8. 23.
진사 이상은 벼슬하지 말라는 뜻 흔히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껴 집안에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사마시만 급제하면 벼슬길에 나가지 말고 향촌에서 학문수행에 힘쓰라는 가르침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의외로 우리나라 선비 집안에는 많이 전해져 온다. 물론 그런 고고한 뜻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뒤집어 이야기해 보면, 이는 굳이 벼슬길에 나가 녹사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왜냐하면 지주전호제에 바탕한 향촌 지주로서 넉넉하지는 않아도 벼슬길 나가지 않아도 먹고 살 경제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에도시대의 경우 이게 불가능했다. 사무라이라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쇼군이 되던가, 다이묘가 되던가, 아니면 하타모토가 되던가 그보다 낮은 등급의 고게닌御家人이 되던가, 아니면 다이묘 수하의 번사라도 되어야 석고제.. 2024. 8. 23.
당쟁의 온상 재지사족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에도막부와 달리조선에는 향촌에 특별한 직역 없이도지주라는 경제적 기초, 사족이라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할 정도의 명예만 보장되면 대대로 사대부로 존재할 수 있는 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는데 이들은 현실적으로 중앙정부가 어떠한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가 상관없이 향촌을 지배하면서 대대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들 재지사족이야말로조선후기 당쟁이 격화되면서 (필자 주: 필자는 이 시기의 정쟁을 붕당정치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나름 면밀히 검토하였는데, 붕당정치라는 이름보다 당쟁이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세력간 싸움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대대로 몇백년씩 이어질 수 있는 사실상의 기초가 되었다. 얼핏 보면 지방..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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