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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93

역사의 변주곡 (1) 통일 왕국을 형성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역사에는 변주곡이 많다. 그리스를 보자. 바로 옆 소아시아 일대도 강대한 페르시아의 통일전제국가로 편입되어 있었지만 그리스 본토는 여전히 작은 소국, 폴리스로 나뉘어 있었다. 이들 폴리스는 "통일국가"로 가는 중간 단계 어딘가 있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별개의 시스템이었던 것일까. 어느쪽일까? 2023. 12. 1.
왠만큼 돌아다녀서는 택도 없게 된 요즘 필자가 인도와 러시아에 작업 차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 오지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돌라비라 유적- 인더스문명 굴지의 유적이 있는 그 오지에 일본 관광객들이 관광버스로 오는걸 보고 참 대단하다 생각을 했다. 요즘은 한국인들이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필자가 돌아다닌 데 자체는 별로 감흥을 못주는 것 같다. 티비를 켜면 인도 파키스탄을 가 본 사람도 부지기수고, 극지는 러시아는 아니라도 아이슬란드까지 쫒아간 사람도 너무 많더라. (물론 필자처럼 땅파러 들어간 사람은 없더라마는) 특히 20대부터 이렇게 배낭 하나 싸매고 돌아다닌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세계사를 논하기 시작하면, 필자 같은 늙다리들은 조만간 명함도 못내는 시대가 올 것이다. 가 봤어야 이야기를 하지.. 세.. 2023. 12. 1.
넓은 세상에 수도 없이 존재한 다양한 국가 형태 우리나라에서 주로 이야기 되는 역사의 합법칙성이라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보지도 못한 세계사를 주로 일본어 번역판, 특히 좌파 역사서를 매개로 해서 들어온 "역사의 합법칙성"이란 개념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80-90년대 학계에서 열나게 싸운 한국사의 노예제 논쟁이라던가, 봉건제 결핍론 등등은 전부 근거도 없고 뿌리도 없는 허상 같은 논쟁이었다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국가의 형태, 권력의 형태가 있는데 한국에 노예제가 있네 없네 봉건제가 있네 없네로 한국사를 평가할수 있을 것인가? 이런 80-90년대 막무가내식 역사의 합법칙성 운운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인문학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회가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2023. 11. 30.
전시과와 과전법 체제는 의제적 제도 우리나라 전시과와 과전법 체제는 국가권력에 의해 토지제도를 위에서부터 정비해 내려간 그런 제도가 아니다. 그게 아니고 원래 있는 토지제도를 하늘아래 왕토가 아닌 것이 없다는 사상에 따라 이건 이걸로 하자, 저건 저걸로 하자 하여 의제적으로 법제화한 그런 제도란 말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전국의 토지제도를 일거에 뒤바꾼 그런 강력한 토지제도였다고 생각하는거-. 그거 자체가 오산이다. 어떻게 아는가? 한국의 고대왕권, 중세왕권하에 성립된 왕성의 모습을 보면 안다. 우리나라는 유사이래 조방제가 강력하게 관철되어 있던 마을 다 밀어내고 반듯하게 성립한 왕성이 만들어졌던 적이 없다. 그렇게 구불 구불한 우리나라 왕성의 모습은 결국 기존의 토지소유 관계를 완전히 밀어 내고 소위 말하는 반전수.. 2023. 11. 29.
9만평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고려시대 군인전 고려시대 전시과제도 하 군인전이라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면적의 토지라는 점은 고려시대 연구자들에 의해 자주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전시과제도에 의하면 군인전은 대략 20결 정도 지급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결이 얼마냐 하면, 삼국시대에서 고려 문종 때까지 1결의 넓이는, 장년 농부의 10지(指)를 기준한 지척(指尺)으로, 사방 640척이 차지한 정방형으로 15,447.5㎡ 정도 된다고 한다. 결이라는 것이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달라지니 평균적으로 이 정도라는 이야기일 게다. 그러면 20결이라면 굍장히 넓은 땅이다. 대략 308940㎡ 정도이니 한변이 550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땅이 주어지는 셈이다. 평수로 하자면 9만평 정도 된다. 이 정도면 굉장히 넓은 토지이다. 이런 토지가 군인전으로.. 2023. 11. 29.
고려시대에 군인전은 왜 필요했을까 앞에도 썼지만, 고려시대의 전시과제도와 조선시대의 과전법은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전자의 경우 군인전이 있다는 것이다. 군인전이 왜 따로 필요했을까? 조선시대에는 군인전은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군인은 병농일치로 군역을 지는 일반 백성으로 병사를 채우고 장교들은 과전법체제하에서 관리들에게 분급하는 토지로 녹봉을 충당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전기의 군인전은 직업군인에게 분급한 토지인데 문제는 이 군인전은 전시과제도에서는 아주 간단하여 별것 아닌 거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계산해 보면 군인전에 속하는 토지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군인전으로 지급되는 토지가 일반 하급관료 수준이었던 데다가 군인전을 받는 군인의 수를 여기에 곱하면 무려 백만결에 육박한다는 계산도 있다. 이 군인전의..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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