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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76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4) 원래는 Dry Lab으로 넘어가는 이유를 주저리 주저리 적으려 했었는데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 글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몇 년 안에 필자는 지난 30년간 해오던 Wet Lab일을 정리하고, 인문학을 한쪽 날개로 장착한 Dry Lab 작업을 60대 이후에 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다. 그리고 이런 작업에는 지금처럼 실험 위주의 연구가 아니라, 통계와 문헌검색과 분석을 주로하는 기법을 바닥에 깔고 인류의 건강과 질병사에 대해 인문학적 검토까지 겸하여 작업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몇 년 후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따로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다. 대개 정년이 다가오면 자연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스토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데 대해 매우 초조해지게 된다. 안 그럴 수도 .. 2023. 11. 16.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3) 요는 그렇다면 인문학적 기법을 어떻게 이용할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30년을 수행해 온 Wet Lab을 포기하고 Dry Lab으로 연구의 중심을 이동시키며 이에 인문학적 연구기법을 대거 채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연구편력 30년은 결국 인간의 건강과 질병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의학적, 자연과학적 기법으로 쌓아온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디테일과 포괄성을 인문학적 연구기법을 대거 채용한 Dry Lab에서는 산출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필자의 60대는 Wet Lab을 접고 인문학과 의과학을 넘나드는 Dry Lab으로 출발하여 필자 평생의 연구 주제인 인간의 건강과 질병사에 대한 보다 분명한 디테일과 스토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23. 11. 16.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2) 앞서 김단장께서 연구보고와 수준있는 학설과의 차이를 이야기 하신 적이 있지만, 물론 이 이야기는 분명히 맞는 이야기겠지만 연구보고 이외에 제대로 쓴 학술 논문이라 해도 자연과학분야에서는 논문 한편에 변죽만 두드리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개 논문은 확고한 증거에 입각한 내용만 fact로 인정되기 때문에 조금만 이에서 이탈하면 사독과정에서 이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거나 그게 아니면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가설에 불과함을 고찰에서 분명히 밝히면서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수십 수백 편 논문이 쌓여도 연구자 주장의 큰 그림이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이러한 엄격한 사독 과정에서 벗어나 있는것이 대개 단행본인데, 단행본은 사독이 생략되거나 어느 정도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 2023. 11. 16.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1) 필자가 쓴 글 중에 웻 랩 (Wet Lab), 드라이 랩 (Dry Lab)이라는 표현이 있어 여기에 대해서 조금 부연한다. Wet Lab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자연과학 실험을 하는 연구실을 말한다. 대개 실험에는 물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과학 실험실 전반을 대개 Wet Lab이라 부른다. 필자도 90년대 중후반부터 연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Wet Lab일을 해왔다. 필자 자신의 독립 연구실이 시작된 것이 1999년이었으므로, 필자 명의의 Wet lab 경력은 약 25년 정도 된다. Wet Lab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과학 연구실을 대표하지만 모든 자연과학 연구실이 Wet lab은 아니다. 실험실 이외에서도 자연과학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2023. 11. 16.
태봉이 수덕이라면 금덕은 고구려인가 신라인가 태봉 연호 정개政開가 묵서된 목간이 나왔다고 한다. 수덕만세水德萬歲 태봉이 수덕이니 그 누리는 복이 영원하라는 뜻이리라. 태봉이 수덕이라고 했다면 그 앞의 금덕은 신라가 맞을까. 금덕이 고구려고 화덕이 신라가 아닐까. 善宗自稱王. 謂人曰, “徃者, 新羅請兵於唐, 以破髙句麗. 故平壌舊都, 鞠爲茂草. 吾必報其讎.” 善宗以強盛自矝. 意欲并呑, 令國人呼新羅爲㓕都, 凢自新羅來者, 盡誅殺之. *** Editor's Note *** 수덕만세水德萬歲는 태봉 궁예가 쓴 연호다. 911년부터 914년까지 사용하다가 개원하면서 국호를 마진摩震에서 태봉으로 고쳤다. 오행은 상생이 있고 상극이 있다. 전국시대 말기 추연이 오행을 들고 나왔을 땐 상생설밖에 없었다. 상극설은 한대에 등장하는데 이게 획기인 까닭은 왕조 교체 논리를.. 2023. 11. 16.
한국사 북방개척의 문제에서 요점은.. 북진정책이나 사대주의 이런 게 아니다. 한국사 북방개척에서 정말 중요한 요점은 당시의 농업기술사다. 왜 통일신라는 북위 39-40도를 돌파 못했고, 이것을 14세기 후반에는 북위 41-43도까지 올라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윤관이 9성을 지었네, 김종서의 육진이 어떻고 하는 그런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수백년 전에는 성공 못했던 농사가 이 시대에는 기술적으로 달라졌는가, 이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라의 북방한계선은 그 당시까지도 쌀농사를 기반한 한반도 남부의 문명으로서는 한 번도 돌파해보지 못한 기술적 한계선이었기 때문에 김춘추가 사대주의자네 아니네 이런 거 하고는 상관없이 대개 그 정도쯤에서 북진은 머물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로서..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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