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4 투탄카멘 복원과 이집트의 자존심 아래 김단장께서 올린 투탄카멘의 복원과 관련하여 사실은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투탄카멘 복원은 필자가 알기로 이집트 학자들이 아니라 이집트학자들과 협업한 유럽의 연구자들이 진행하였었는데 과학적인 연구 결과라 별 생각없이 발표하였겠지만 이 연구결과가 투탄카멘의 위신을 손상하고 이집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하여 난리가 났었던 것으로 안다. 지금 다시 뉴스를 찾아보니 예전에 필자가 알음알음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는 많이 보도되지 않은 것 같은데, 미라 연구는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King Tutankhamun was a warrior and NOT a sickly boy-king, experts sayLegend has it that Egypt's most famous king was f.. 2024. 6. 7. 뱀파이어로 몰려 죽은 중세 유럽인들 아래 김단장께서 쓰신 글 중 머리에 못이 박힌 채로 발견된 유골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인골이 유럽에서 발견되는 경우 대개 뱀파이어 혹은 마녀 등과 관련되어 처형된 사람의 시신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아래 미국의 유명 잡지 Scientific American 기사에 보면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어린 아이의 인골에 철심을 박아 놓은 경우인데, 이렇게 못 등으로 신체 일부를 땅에 박아 버린 경우 생전에 뱀파이어나 마녀 마법사 등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된 이들이 최후의 심판때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가 개제되어 있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400-Year-Old 'Vampire Child' Was Buried with Their Foot Padlocked so They Wouldn't .. 2024. 6. 7. 옥수수는 왜 옥수수인가? 기장과 수수로 밥을 하면 다 된 밥에서 살짝 옥수수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기장과 수수가 옥수수와 상당히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장이나 조는 Millets, 수수는 Sorghum이다. 여기서 Zea라고 써 놓은 것이 옥수수다. 왜 옥수수를 우리 조상들이 옥"수수"라고 불렀겠는가? 익은 옥수수의 냄새가 수수나 조, 기장과 비슷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옥수수를 トウモロコシ라고 부른다. 여기서 モロコシ가 수수라는 뜻이다. 왜 옥수수를 굳이 수수와 연결시켜 이름지었는가 하는 것은 한번만 기장과 수수를 삶아 냄새를 맡아 보면 안다. 쌀에 섞어 짓지 말고, 깡기장밥, 깡수수밥으로 쪄서 지어보면 그 향이 옥수수와 거의 방불하다. 기장, 수수, 옥수수, 조는 서로 사촌이기 .. 2024. 6. 7. [기장 실험] 파종 후 2일째-. 생장속도가 상당하다. 단 3개월이면 수확, 탈곡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전세 계에서 가장 빨리 작물이 된것 이 기장이라 한다. 싹튼 기장 일부에는 물을 전혀 안줘 볼 생각이다. 기장은 단 3개월이면 수확이 되고 비가 오나 안 오나 자라므로 우리 조상들이 가장 먼저 작물화 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 보겠다. 2024. 6. 7. 개 식용의 기원 사실 이런 이야기는한국도 개식용을 하는 입장에서 옆나라에 그 기원을 돌리는 것 같아 조금 꺼려지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좀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알겠지만 개 식용의 기원은 황하유역 농경을 기반한 신석기시대 문명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본다. 개 사육은 기원이 모든 가축 중 가장 오래되어 농경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이 키운 가장 오래된 가축이다. 때문에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건너간 초기 이주민들도 개는 데려갔다고 보는 게 지금 통설인 만큼한국이나 일본 등 중국보다 문명이 늦게 발생한 나라들도 농경이 시작되기 전 이미 개 사육은 있었다. 조몬시대를 보면 이른 시기부터 개가 확인되며 한국 역시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조몬시대나 한국의 농경 이전 개 유해의 경우식용의 증거가 .. 2024. 6. 7. 등자 없이도 말 위에서 총만 잘 쏜 인디언들 조나라 무령왕과 기병, 그리고 등자 앞에서 썼지만 등자가 있어야 말위에서 활을 쏜다던가 말위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동작은 등자가 나와야 가능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당장 19세기 후반 미군 기병대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던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말을 타고 백인들 쪽에서 흘러나온 라이플을 들고 싸움을 했는데 위 그림에서 보듯이 이들은 등자가 없이도 마상에서 총을 역동작으로도 쏘고 있었다는 말이다. 등자가 없으면 저 동작이 훨씬 쉽게 가능했겠지만 저 동작이 등자가 있어야 가능했던 건 아니다. 전국시대 조 무령왕의 기병이나, 한나라 때 곽거병 위청 등의 기병도 모두 등자가 없던 시대의 기병들이다. 등자가 혁신적인 건 옳겠지만 기병전의 양상 자체를 바꾼 것일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다. 2024. 6. 6. 이전 1 ··· 68 69 70 71 72 73 74 ··· 3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