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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5

여말선초 사전개혁 평가는 해방 후 토지개혁사관이 투영된 것 간단히 할 말만 쓴다. 현재 한국사에서 여말선초의 사전私田 개혁에 대한 평가는 전혀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한국사가 여말선초의 사전개혁과 공전公田에 입각한 과전법 체제를 긍정하는 입장으로 본다면 당시 동아시아 다른 나라, 중국과 일본의 토지제도의 발전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이 두 나라 어디도 공전제가 붕괴한 후 한국처럼 격심하게 사전을 쓸어버리고 공전제로 회귀한 전례가 없다. 이건 여말선초의 사전개혁이 그 자체 상당히 평가가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말선초 사전개혁에 대한 현행 한국사의 평가는 해방후 토지개혁사를 보는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시 사전 토지 문서를 모아 한꺼번에 불태웠는데 사흘 밤낮을 타올랐다는 것이고 보면, 이는 쉽게 말하면 일본 무.. 2024. 4. 14.
여말선초 과전법을 혁명이라 부르는 무신경 여말선초의 사전혁파와 과전법체제의 성립을 우리는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연결해서 일종의 개혁, 혁명으로 본다. 여말에는 사전과 농장이 급증하고 토지침탈이 심해 권문세가의 횡포가 심했는데 이걸 때려 엎은 것이 사전개혁과 과전법체제로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는 시각이다. 이걸 한 번 보자. 당시 사전문제는 한국만 겪던 문제가 아니고, 동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공통으로 골머리를 썩던 문제였다. 정확히는 중국은 균전제 붕괴 이후, 일본은 율령체제의 붕괴이후부터 이미 공전이 무너지고 사전이 급증하여 사회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의 후삼국의 혼란과 무신 정변 등도 모두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동양 삼국 중 이 위기를 우리처럼 사전 문서를 다 .. 2024. 4. 14.
여말선초 사전개혁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다 현재 여말선초 사전개혁과 과전법 체제의 출범을 보는 시각은 송곳 하나 꽂을 곳 없이 겸병이 극성을 부리던 사전의 폐해를 종식시키고 사전을 혁파한 후 공전에 기반한 과전법 체제를 출범시켜 여말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신진사대부가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이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적자면, 이 당시 사전혁파의 이유는 이게 아니다. 사전은 그렇게 공공의 악도 아니었다. 중국이건 일본이건 그 정도의 사전은 모두 있었고, 겸병이라고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겸병 없던 나라 나와 보라고 해라. 겸병하면 엄청난 것 같지만 일본사에서 비슷한 시기 발달한 장원 그것들이 전부 겸병의 결과물이다. 의심스럽다면 일본의 장원의 성립과정을 한번 일본사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그게 겸병이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문제는 그런 겸병.. 2024. 4. 14.
일본사 중국사 무시하고 쓴 한국사 거듭 써보지만, 여말선초까지의 이른바 사전私田 문제는 한국사에서만 겪던 혼란이 아니다. 일본, 중국, 다 있었다. 이런 사전이 새롭게 부상하는 권력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덴노가 장원정리령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낸다. 장원정리령이란 결국 토지제도를 공전에 기반한 율령체제 시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리자는 것으로, 우리로 치자면 과전법 비스무리하게 돌리자는 기도인데 일본사에서 이것은 꽤 많이 시도되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사전 문제는 대토지소유자가 토지를 마구 뺏아 농장을 만드니 농민들이 자기 토지를 잃고 궁벽해져 사회위기가 오는 것을 신진사대부들이 사전개혁으로 혁파하고 과전법체제로 혁신하였다, 이런 삼류 스토리로 포장할 만큼 간단한 .. 2024. 4. 13.
꼬이면 고민없이 때려 엎는 일을 혁명이라 부른다 한국사에서 난맥상의 하나가 바로 토지문제와 금전문제이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지라서 먹고사는 문제 관련해서 꼬이기도 하는 법이다. 이걸 어떻게든 돌아가는 모양을 만들어 놓으려는 노력을 해야지 안 돌아간다고 그걸 때려 엎어 놓고는 혁명과 위민이라고 치장하는 과정이 한국사에는 여러 번 보였다. 예를 들어 여말선초의 사전-. 이건 당시 한국사만 이런게 아니고 중국사, 일본사 모두 소위 말하는 균전제-율령제가 붕괴하고 난 뒤 일어나는 사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문제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겪던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유독 한국만 이걸 때려 엎어 사전을 싹 다 밀어버리고 공전 일색으로 만들어 놓고는 이걸 혁명이라고 포장했다. 솔직히 여말선초의 사전개혁을 그걸 "혁명"이나 "개혁"이.. 2024. 4. 13.
누에의 기원 근간 "한국의 고고학" 63호에 필자와 국립청주박물관 이양수 관장, 경희대 홍종하교수 고아라 선생이 함께 쓴 "누에 사육의 기원과 역사적 확산과정의 고찰"이 실린다. 정식 학술논문과는 다르므로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이 작업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동물 사육 및 식물 재배의 기원에 관해 살펴보고자 하는 동기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아마도 동아시아 누에의 기원과 확산에 관해서는 한글로는 처음 나온 글이 아닌가 한다. 졸고를 게재해 주신 한국의 고고학에 감사드린다. 202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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