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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여말선초 사전개혁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다

by 초야잠필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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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말선초 사전개혁과 과전법 체제의 출범을 보는 시각은

송곳 하나 꽂을 곳 없이 겸병이 극성을 부리던 사전의 폐해를 종식시키고 

사전을 혁파한 후 공전에 기반한 과전법 체제를 출범시켜 여말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신진사대부가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이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적자면, 

이 당시 사전혁파의 이유는 이게 아니다. 

사전은 그렇게 공공의 악도 아니었다. 

중국이건 일본이건 그 정도의 사전은 모두 있었고, 

겸병이라고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겸병 없던 나라 나와 보라고 해라. 

겸병하면 엄청난 것 같지만 일본사에서 비슷한 시기 발달한 장원

그것들이 전부 겸병의 결과물이다. 

의심스럽다면 일본의 장원의 성립과정을 한번 일본사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그게 겸병이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문제는 그런 겸병을 가지고도 일본사는 망하지 않고 잘 갔고, 

그 기반위에 무가정권이 성립되고 최종적으로 에도 막부까지 그 기반위에 있었다. 

이쯤되면 

여말선초 사전개혁은 도대체 왜 성공했을까를 오히려 반문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기 사전개혁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다. 

동아시아 보편사에서 보자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궤도 이탈이었다는 말이다. 

공전이 붕괴하고 사전이 성행하여 확대일로를 달리던 그 시절에 

느닷없이 사전을 쓸어버리고 공전 중심의 과전법이 출범하게 되었다면

그것을 정의의 승리로 미화하기 이전에

어째서 이렇게 복고풍의 제도가 다시 설치되었는지, 

이것은 역사의 순풍인지 역류인지 한번은 격론이 있었어야 정상이 아닐까? 

과문하지만 그런 주제의 논쟁이 있었다는 이야기 단 한번도 들은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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