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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73

무쇠솥 뚜껑은 왜 중요한가 결국 압도적 밥맛은 밥을 할 때 가열되는 와중에 어느 정도로 효율적으로 증기를 잡아낼 수 있는가에 있다. 지금도 이것은 중요하다. 현대 전기밥솥이 거의 압력솥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코펠로 밥을 지어 본 사람은 알 텐데, 요즘은 취사가 불가능하지만 필자가 학생 때만 해도 설악산 꼭대기에서 코펠로 밥 지어 먹는 사람 천지였다. 설악산이 해발 1700 미터인가 뭐 그럴 텐데 이 정도 고도만 되도 물이 100도 아래에서 끓기 때문에 코펠 같이 얇은 두껑으로 간신히 막아 놓은 취사기로 밥을 하면 백프로 설익게 된다. 산 꼭대기에서 선 밥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짱똘을 가져다가 코펠 뚜겅 위에 올려 놓는다. 100도 이하에서 끓는.. 2024. 1. 25.
밥 뜸들이기는 한국의 발명품인가? 현재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밥 뜸들이기는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의 발명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학계에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물로 밥을 끓인 후 마지막 단계에서 뚜껑을 닫고 불을 줄여 뜸들이며 바닥 쪽을 가볍게 태워 누룽지도 만들어 내는 방식의 취사는 밥맛을 혁신적으로 좋게 했는데 이런 방식의 취사는 한국 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그 구체적 시기는 아마도 쇠솥의 출현 이후일 텐데, 필자의 감으로는 쇠솥의 모양.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전 포스팅에서 김단장께서도 얼핏 지적하신 듯한데 필자가 보기엔 같은 쇠솥이라도, 밥을 찔때 쓰는 쇠솥과 밥을 끓여 뜸들일 때 쓰는 쇠솥의 모양이 다른 것 같다. 밥을 찔떄 쓰는 쇠솥은 아마도 청동기시대 이래 토기 중 시루 아래 쪽에서 물을 끓이는 토기와.. 2024. 1. 25.
철솥의 진화: 쇠뚜껑은 언제 출현했나 최근까지 발굴 보고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철솥은 초기에는 쇠뚜껑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가장 이른 시기 철솥은 토기로 밥을 쪄먹던 시대의 물끓이는 아래쪽 토기의 역할을 했다고 보이고, 이런 예가 아차산보루에서 나온 위는 토기 시루 아래는 쇠솥의 조합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어느 시기부터인지 특정하기 어렵지만, 밥을 쪄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끓는 물로 취사하는 방식의 지금과 같은 밥짓기가 탄생했다고 보이는데 이런 밥짓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아마 처음에는 쇠솥의 뚜껑은 나무뚜껑이었지 싶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쇠솥의 뚜껑을 나무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어느시기부터인지 쇠뚜껑이 나올 텐데 필자 생각에는 이 쇠솥의 쇠뚜껑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를 특정하는 것 역시 쇠솥이 출현하는 시기 못지 않게 .. 2024. 1. 25.
대장경, 경판은 왜 만들었고 몇 부나 찍었을까? 한국의 금속활자는 다들 아시겠지만 소량 다품종 도구다.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한번 판을 짜면 한 백부나 찍었을까. 20-30부 찍고 판을 깨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듯 하다. 요즘으로 치면 복사기보다 조금 더 찍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그 정도였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인쇄가 필요한 경우는 알다시피 목판을 찍었을 테고. 항상 드는 의문은 대장경판목-. 초조대장경부터 재조대장경까지 판목수가 정말 수십만 장인데 이거 판각한 후 과연 몇 질이나 인쇄했을까.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 조판 후 지금까지 몇 부나 찍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고 하면 팔만대장경 전체를 과연 몇 번이나 인쇄했을까 싶어서다. 그만한 종이와 먹이 .. 2024. 1. 25.
한국 출판문화의 세계화 우리나라 출판계-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는 한국 내에서 출판하여 국제적으로 책 팔아 먹기는 참 요원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천년 전에 목판 수십 만 장을 파서 대장경 수천 권을 사방에 뿌려댄 우리 조상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양반들이 요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출판물은 한반도 남쪽 절반 바깥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2024. 1. 25.
절풍折風과 에보시烏帽子 일본사를 보다 보면 저건 한반도에서 간 것 같은데? 싶은데도 수백년이 사이가 비어 있는 경우를 꽤 여러 번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절풍과 에보시. 필자가 보기엔 일본의 에보시는 어떤 방식이건 한반도 삼국시대 절풍 영향을 받은 복식이다. 에보시는 전국시대에도 성인식 후 착용했고 무가에서도 매우 폭넓게 이용하던 관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류층에는 이 에보시와 거의 비슷한 관을 쓰고 있고 이를 고구려에서는 절풍, 신라나 백제에서도 유사한 관을 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 보면 막상 수백 년 공백이라면 공백이 있다는 것이 문제겠다. 또 다른 예. 일본불교에는 전수염불專修念佛, 염불을 죽도록 암기하여 성불하자는 교리의 불교들이 꽤 있다. 그런데 ..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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