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를 보다 보면 저건 한반도에서 간 것 같은데?
싶은데도 수백년이 사이가 비어 있는 경우를 꽤 여러 번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절풍과 에보시.
필자가 보기엔 일본의 에보시는 어떤 방식이건 한반도 삼국시대 절풍 영향을 받은 복식이다.
에보시는 전국시대에도 성인식 후 착용했고 무가에서도 매우 폭넓게 이용하던 관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류층에는 이 에보시와 거의 비슷한 관을 쓰고 있고
이를 고구려에서는 절풍, 신라나 백제에서도 유사한 관을 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 보면 막상 수백 년 공백이라면 공백이 있다는 것이 문제겠다.
또 다른 예.
일본불교에는 전수염불專修念佛, 염불을 죽도록 암기하여 성불하자는 교리의 불교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불교를 유심히 보면
금방 생각나는것이 6세기 원효를 중심한 신라 불교이다.
그런데 일본의 전수염불의 불교들과 신라불교와는 마찬가지로 수백 년 공백이 나온다.
일본에는 건축양식으로 신덴즈쿠리寢殿造 라는 양식이 있다.
그런데 이 신덴츠쿠리를 유심히 보면
딱 생각나는 것이 신라 동궁과 월지다.
그런데 여기에도 수백년의 공백이 있어 바로 끌어다 붙이기 어렵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뵤도인平等院.
불국사와 발상 자체가 상당히 유사한 건물이다.
그런데 여기도 시간적 공백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백의 이유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모두 우리의 헤이안시대에 대한 무지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헤이안시대에 이를 연결시켜줄 미싱링크가 있을 터인데
우리 연구수준이 낮다 보니 그 미싱링크를 못찾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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