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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3088

소가 끌다 코끼리로 교체된 명나라 황제의 수레 요새 신동훈 교수께서 맹렬히 우리가 흔히 마차馬車로 아는 것이 말이 끄는 마차가 아니라 실은 소가 끄는 우차牛車일 가능성을 지적하는 글을 연속으로 쓰고 계신 바 간단히 그 맥락을 추리자면, 귀인貴人으로 분류할 만한 돈께나 있는 사람들은 나들이에 말을 이용하지 않았고 소를 이용했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고 말을 타지 않았는가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군인들은 당연히 말을 탔다. 소 타고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날렵함을 무장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말이 도입되고서는 탔다. 하지만 그런 시급성을 다투지 아니하는 사람들한테, 또 말 타기에는 아무래도 서툴 수밖에 없는 사람들한테 말은 굉장히 위험한 교통수단이었으니, 낙마사고로 죽는 일이 그리 많았으니, 이는 요새 교통사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2023. 12. 19.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3) 걸핏하면 뇌물죄로 걸려든 광물 전문가 3. 광물 전문가 이제 장영실이 어떠한 인물인가를 실록에 드러나는 그의 행적을 통해 정리해 보자.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건대 그가 맨 먼저 등장하는 시점은 세종 7년(1425) 4월 18일이다. 이 날짜 한 기록에 의하면 임금이 지금의 평안도 도지사 정도에 해당하는 평안도감사에게 명을 내리기를 “석등잔 대·중·소 아울러 30개를 이제 가는 사직(司直) 장영실(蔣英實)이 말하는 것을 들어 준비하라” 고 했다는 것이다. 석등잔이란 돌로 만든 등잔을 말한다. 그 사용처가 궁중이었음을 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에는 전기가 있을 리 만무하니 밤에는 촛불을 켜서 밤을 밝혔다. 등잔은 말할 것도 없이 촛불 받침대다. 한데 이에서 말하는 석등잔이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인지는 다른 사례를 검토해 봐야 한다. 그 .. 2023. 12. 18.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2) 대통령 전용차 부실 제작 책임을 진 장영실 2. 대통령 전용차 부실 제작 책임을 진 장영실 시험 삼아 이에서 ‘장영실’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어 본다. 우리에게 상식으로 각인한 장영실은 세종시대에 측우기를 비롯한 각종 과학기구를 만든 장인이라 해서 그에서 본뜬 과학정신을 기린다며 만든 과학상 이름도 ‘장영실상’이 있을 정도라 난삽하게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결과는 전연 뜻밖이다. 그 방대한 실록에도 번역본 기준으로 실록에서 걸리는 ‘장영실’은 서른 번밖에 되지 않으며, 더구나 그의 사후에 언급된 이름 빼고 생전에 등장하는 ‘장영실’은 횟수가 14번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그 14번 중에서도 절반에 육박하는 무려 6건이 뇌물을 받거나 물건을 잘못 만들어 처벌 받은 일에 관한 것이니 도대체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각종.. 2023. 12. 17.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1) raw file로 대면하는 조선왕조사 *** 내가 역사전문 언론인으로 직업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해직 시절(2015~17년)이었을 원고다. 본문이 언급되듯이 선문대 구사회 선생이 마련해준 특강 자리였으니, 그때 강연록 원고다. 물론 이대로 강연하지는 않았다. 마침 근자 강민경 군이 장영실과 관련한 의미 있는 논문을 공간했기에 옛날 묵힌 원고를 새삼 꺼내어 6회분으로 나누어 싣는다.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김태식 역사전문 언론인 1. raw file로 대면하는 조선왕조사 세종과 장영실에 대한 강의를 한 달 전쯤 나는 이 대학 구사회 교수께 요청받을 때만 해도 적어도 후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아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세종이라고 해도 성군聖君이라는 피상의 인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 달이.. 2023. 12. 17.
김천중고교 설립에 전 재산 몰빵한 울트라갑부 할매 최송설당 그 궤적 1855. 8. 29 철종 6년 김산군 군내면 문산리( 김천시 문당동)에서 아비지 최창한崔昌煥과 어머니 정욕경鄭玉瓊 사이에서 무남삼녀의 장녀로 출생. 본관은 화순和順, 남명 조식曺植의 수제자 수우당 최영경崔永慶의 후손.1860-1870 부친으로부터 한학과 한글 수학.1882. 3. 10 사촌 동생 창복昌福의 아들 최광익崔光翼을 들여 대를 잇게 함.1886. 6 19 부친 최창환 별세. 전라도 함평 신광면 삼천동까지 운구하여 장례 지냄.1894(40세) 상경하여 누룩골(현 무교동)에 거치하며 불교에 귀의.1897 엄비와 가까워졌고 황태자 이은(李垠, 영친왕)이 탄생하자 입궐해 보모가 됨.1901. 11 고종황제로부터 몰적沒籍의 복권이 내려 89년 만에 선조의 명예 회복.1908. 5 친묘親墓를 수축입석修築.. 2023. 12. 16.
김천고등보통학교 김천고등학교 초창기 역사 1930. 4. 김천고등보통학교 후원회 조직 1931. 2. 재단법인 송설당교육재단 인가 |이사: 고덕환, 이한기, 최석태, 최동렬, 김종호 감사 :조상걸, 문창영 취임 송설당교육재단: 상무이사 고덕환, 재무이사 이한기 선임 1931. 3. 교장校章 제정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인가, 5년제 5학급 학교부지 정지 작업 착수 초대 안일영 교장 취임 5. 입학식 거행(이 날을 개교기념일로 정함) 1932. 1. 교가 제정(작사 정열모, 작곡 현제명) 제2대 정열모 교장 취임 8. 본교사 신축 낙성(6.25로 일부 파괴, 1957년 6월 수리) 1933. 10. 제1회 운동회 1934. 4. 교우회 창설 12. 제1회 내한마라톤 1935. 1. 기숙사 신축 낙성(6.25로 일부 소실, 1951년 고등학교 가교사.. 202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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