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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77

임진년에 쇠말뚝을 꽂은 명나라 술사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八道總論) 중 경상도 중 선산(善山) 조 기술이다. (상주) 남쪽에 있는 선산은 산천이 상주보다 더욱 깨끗하고 밝다. 전해 오는 말에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일선一善에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예부터 문학하는 선비가 많았다. [南則善山, 山川比尙, 尤淸名穎秀, 故諺曰, 朝鮮人才半, 在嶺南, 嶺南人才半, 在一善, 故舊多文學之士] 임진년에 명나라 군사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명나라 술사術士가 외국에 인재가 많음을 꺼리어 군사를 시켜 고을 뒤 산맥을 끊고 숯불을 피워 뜸질을 하게 했다. 또 큰 쇠못을 박아 땅의 정기를 눌렀는데, 그 뒤로는 인재가 나지 않는다. [壬辰, 天兵之過此也. 術士忌外國多人才, 使兵卒斷邑後脈, 熾炭灸之, 又揷大鐵釘壓住, 而自是人才衰苶.. 2024. 2. 27.
은사기념과학관을 위탁운영한 조선교육회란? 3) 조선교육회 조선교육회는 이전에 경성교육회라 칭하였고, 1902년(명치 35) 5월 창립되어 회원은 겨우 20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10년(명치43) 12월 조직을 변경해서 조선교육회로 개칭하였으며, 조선 각 도에 걸쳐 1,400여 명의 회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서 1915년(大正 4) 9월에 다시 조직을 변경하여 회명을 조선교육연구회로 고쳤으며, 회원은 3,105명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에 그해 10월 30일 기관지 '조선교육연구회잡지' 제1호를 간행(중간에 잡지명을 조선교육으로 개칭)하여, 명실공히 조선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서 면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22년(치 11) 2월, 새로 '조선교육령'이 발표되자 이 회는 각 도 교육회를 지회로 하고, 각 도 교육회는 각 부府·군郡·.. 2024. 2. 27.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 대정 천황 내탕금으로 비롯한 한국과학의 효시 2) 은사기념과학관 1925년(大正 14) 5월 10일 다이쇼大正 천황 성혼成婚 25주년 기념 축전을 거행하는 때를 맞아 사회교육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내탕금 17만 원이 하사되었다. 이를 주요 재원으로 설비비에 충당하고 경상비는 국고 보조(첫해 보조 예산 5만 원)를 받아, 왜성대倭城臺 구舊 총독부 청사를 이용해 1926년(大正 15) 1월 은사기념과학관을 창립하고 1927년(昭和 2) 5월 10일부터 개관했다. [515] 은사기념과학관은 재단법인 조선교육회 교화부의 사업으로 이를 경영하게 하여 널리 내외의 교화 자료를 수집하고 현대 문화의 축도縮圖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고, 실지로 문명의 혜택을 평이하고 간명하게 전달시키며, 민중의 과학적 상식을 계몽·배양하고, 이용후생이 과학에 근거해 왔음을 이해시키며.. 2024. 2. 27.
거란의 수도 방위군 앞서 거란군 수도 방위 시스템을 논급했으니 이는 그 시스템을 간단히 도해화한 것이다. 오행五行에서 비롯하는 오방五方에 기초해 중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사방에다 호위군을 배치했다. 이 호위군을 피실皮室이라 했으니 황제를 보호하는 피부막과 같은 조직 군대라는 뜻이다. 左피실은 곧 東피실이며 右피실은 곧 西피실이다. 가운데 黃피실이 내 추정에 의하면 아마도 천운군天雲軍이라 별칭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와는 별도로 움직이는 기무사령부였을 것이다. 그런 증언이 없지만 틀림없이 저들은 각기 오방색을 따라 깃발이나 군복 색깔을 달리했을 것이다. 곧 계절로는 봄 기운 싹트는 해 뜨는 동쪽 좌피실은 청색, 남방 자오선 태양이 지나는 여름의 남쪽 남피실은 이글거리는 태양색깔인 주색, 해가 지는 서쪽 우피실은 가을에.. 2024. 2. 26.
아동 열명을 통역사 전문 양성요원으로 거란에 보낸 고려 인지언어학에서는 brain localization 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습득을 관장하는 뇌 어느 부분은 13세 정도가 되면 언어습득이 끝난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려면 열세살 이전에 시작해야 한다. 뭐 그 비스무리한 걸로 기억하는데 꼭 저와 같은 거창한 개념 빌리지 않아도 이건 생득으로 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외국어 전문통역관을 통하게 해주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해서 통사通事라 하고 저런 이름을 붙인 중국어 학습교재 박통사朴通事가 있다. 이 전문교육 기관을 사역원司譯院이라 하는데 번역 통역을 맡은 기관이란 뜻이다. 조선후기인가 그 자리는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데다. 이곳에서도 대개 아동들을 조기교육하고 심지어는 조기유학을 보내기도 했으니 고려 성종 때인가? 감찬이 형이랑 배압이 형이 사생결단 한 판 .. 2024. 2. 26.
[귀주대첩] (16) 주력 상비 최정예군이 궤멸된 거란 귀주대첩이라는 고려의 대승으로 끝난 이른바 제3차 고려거란전쟁은 자칭이기는 하지만 거란군이 동원한 군사 규모가 이전과 비교해 적은 10만이라서 언뜻 보기엔 당시 거란 국력을 고려해 이 정도는 전면전이 아니지 않았나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서희의 담판으로 끝난 1차 전쟁에 언필칭 80만, 성종 야율륭서가 친정한 2차 전쟁에 40만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적은 숫자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 숫자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 질이 문제인 까닭이다. 80만, 40만이라 하지만 이는 실상 그 보급부대를 합친 것이라, 실제 전투를 치르는 군사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10만이라 해도 실상 아무리 거란 국력을 고려해도 만만찮은 숫자다. 이 3차 전쟁을 어떤 자세로 준비했는지는 요..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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