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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을 전쟁에 잃고 《가정집(稼亭集)》 제1권 잡저(雜著)에 실린 ‘절부(節婦) 조씨전(曺氏傳)’을 가정이 쓴 까닭은 그의 손녀사위가 마침 친구인 이유도 있거니와, 이를 통해 가문을 현창해 주려는 의도 역시 다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의 우리가 아래 텍스트를 그런 가정의 눈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절부전이 나로서는 몇 가지가 흥미롭거니와, 당시는 전란의 시대라, 그에서 어떤 여인이 겪은 참상이 무엇보다 드라마틱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이 절부전을 분석하면 수령현(遂寧縣) 사람인 조씨는 아마도 1265년에 출생해 가정이 저 글을 쓴 당시 77세라 했으니, 1341년까지는 생존이 확인된다. 아버지는 몽고 침략에 대비해 조정이 강화도로 옮겼다가 환국할 때 대위(隊尉)라는 군직에 있던 조자비(曺..
문집의 유전 : 《가정집(稼亭集)》의 경우 고려말 문사인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문집인 《가정집(稼亭集)》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으며, 어떻게 보완 유전되게 되었는지는 현전하는 이 문집에 붙은 네 시기 발(跋)을 보면 여실하다. 아래는 그 시기별 발문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7에 의한다. 1. 초간본(初刊本)가정 이중보는 나와 똑같이 익재(益齋) 문하 출신이요, 또 한원(翰苑)에서 함께 노닐었던 인연도 있다. 무릇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물으면서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우러렀는데, 허망하게도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아, 애석한 일이다. 지금 그의 아들인 밀직 제학(密直提學) 이색(李穡)이 신축년(1361, 공민왕10) 파천(播遷)하는 창황(蒼黃)한 때를 당해서도 유고(遺稿)를 잃지 않고 20권으로 엮은 다음에 매..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 연보 그의 사후 아들 이색(李穡)과 사위 박상충(朴尙衷)이 엮은 《가정집(稼亭集)》 所收 ‘가정선생연보(稼亭先生年譜)’에 의한 그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출처 한국고전번역원 DB) 대덕(大德) 2년 무술(1298, 충렬왕 24) : 7월 임인일에 공이 태어나다.연우(延祐) 4년 정사(1317, 충숙왕 4) :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하다. 박효수(朴孝修)가 감시(監試)하다.연우 7년 경신(1320, 충숙왕 7) : 가을에 수재과(秀才科)에 제2명(第二名)으로 합격하다. 익재(益齋) 선생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였고, 박효수가 동지공거(同知貢擧)였다. 복주 사록참군사(福州司錄參軍事)에 조용(調用)되다.태정(泰定) 3년 병인(1326, 충숙왕 13) : 가을에 정동성(征東省) 향시(鄕試)에 제3명으로 합격..
화랑세기를 피해가는 한 방법 나는 물건 감정과 전문가는 다르다고 본다. 미술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예컨대 도자기가 있다. 나는 도자기 감정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로 보지는 않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가장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는 그 진위를 감정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사동 같은 데서 일하는 골동품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골동품 취급하는 일과 도자기를 연구하는 일은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자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단안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감정일지라도 말이다."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이른바 화랑세기에는 김흠돌 모반의 전말이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
전통시대의 외교관 면책 특권, 의천의 경우 전통시대에도 그 비스무리한 외교관 면책 특권이 있었다. 고려시대 의천을 보면 이 특권이 조금은 드러난다. 의천은 원래 밀입국자였다가 宋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고려와 송 두 나라 조정에 의해 외교사절단으로 급조되었다. 그의 宋 체재기간은 많아봐야 14개월, 대략 만 1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 다른 고려 외교사절단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우리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는 증빙은 어떻게 하는가? 당시에 아그레망이 있을리는 없다. 귀국 이후 의천은 송 체재 기간 스승으로 섬긴 정원법사라는 승려가 입적했다는 말을 듣고는 제자들을 조문단으로 파견한다. 한데 하필 재수없게도 입항하는 쪽 지방장관이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라면 못 잡아먹어 환장한 그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 조문단은 가는 ..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도홍경(陶弘景)의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神農本草經》은 중국 현존 최고의 정비된 전문 본초학서. 그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나 기원전 1세기 무렵 전한 말기가 아닐까 한다. 神農이라는 명칭은 그 저자가 神農으로 설정됐기 때문인데, 말할 것도 없이 이는 神農이라는 신화상 인물에 가탁한 것이다. 本草라는 말은 《漢書 平帝紀》에 가장 빠른 용례가 검출된다. 하지만 本草라는 말에 이끌리어 초본 식물만을 약물 대상으로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약물을 통칭할 때 흔히 本草라고 했다. 그렇지만 본초가 약물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신농본초경》은 원서가 산일(散佚)되고 현재 통용되는 판본은 이곳 저곳에 산발적으로 인용된 글들을 모아 놓은 소위 집록(輯錄)이다. 이 집록에 수록된 약물은 365종이며 草, 谷, 米, 果, 木..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니혼몬토쿠텐노우지츠로구. にほんもんとくてんのうじつろく) 平安時代 編纂된 史書로 六國史 다섯 번째. 文德天皇 시대인 嘉祥 3년(850)에서 天安 2년(858)까지 8년간 역사를 다룬다. 간단히 『文德實錄』이라고도 한다. 편년체이며 한문이고 전 10권. 서문에 의하면 淸和天皇이 貞觀 13년(871)에 藤原基經, 南淵年名, 都良香, 大江音人 등에게 명해 편찬을 시작했다. 音人이 서거한 뒤 元慶 2년(878)에 菅原是善을 참여케 하고, 基經 良香과 함께 3인이 이듬해인 879년에 완성했다. 六國史 중에서 다루는 기간이 가장 짧다. 정치 관계 기사가 적고 하급 관료 인물전이 많은 특징이 있다. 黑板勝美編 『新訂增補國史大系日本文德天皇實錄』坂本太郞 『六國史』 吉川弘文館 1970年 新裝版 1994年.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쇼쿠니혼코우키. しょくにほんこうき) 平安時代인 869년에 성립한 역사서. 六國史 중 네 번째. 仁明天皇 시대인 天長 10년(833) 이후 嘉祥 3年(850)까지 17년간 역사를 정리했다. 편년체이며, 한문이고, 전20권. 文德天皇 齊衡 2年(855年) 藤原良房, 伴善男, 春澄善繩, 安野豊道이 편찬하기 시작했다. 그 뒤 良房 동생인 良相이 가세했으나 완성 전에 서거한데다, 善男 자신은 應天門의 變에서 流罪되고, 豊道의 下總介에 부임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六國史 중에서 처음으로 특정 天皇 1代를 대상으로 한다. 承和의 變도 이 책에 기재됐다. 宮中行事 등은 상세하나 정치 관계 기사는 적은 편이다. 黑板勝美編 『新訂 增補 國史大系日本後紀, 續日本後紀, 文德天皇實錄』, 吉川弘文館坂本太郞 『六國史』, 吉川弘文館, 1970年, 新裝版1994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