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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번저藩邸,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을 위한 수도 에도의 숙박 시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90833876 "삼시 세끼 제공에 헬스장 있는데 月 20만원"…경쟁률 폭발 [이현주의 빌려살기] "삼시 세끼 제공에 헬스장 있는데 月 20만원"…경쟁률 폭발 [이현주의 빌려살기], [이현주의 빌려살기 3] 물가상승·월세난에 지자체 기숙사 '향토학사' 인기 연세대 인근 원룸 전년비 50% 올라…평 www.hankyung.com 최근 각 지자체마다 이런 곳이 많은가 보다. 서울 유학생들이 싸게 묵으며 공부할 기회를 주는 기숙사로 이런 곳은 늘어나면 좋겠다. 일본의 에도시대는 중앙의 막부幕府, 지방에는 번藩이 존재하는 소위 막번幕藩시대로 영주들이 정기적으로 에도로 올라가는 참근교대参勤交代[산킨코다이] 외에도 번에서 에도江戶로 유학을 보내는 .. 2023. 9. 10.
건준 여운형, 정체불명의 여론조사로 쓴 역사 필자의 대학 시절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시대다. 이 책은 대학 입학과 함께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이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70년대, 이영희의 (필자는 이영희라 쓴다. 리승만이라 쓰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의 바톤을 이어받은 책이라 할수 있는데, 이영희의 책이 중국의 예로 냉전시대를 재규정하려 했다면 '해전사'는 한국사, 특히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역사를 도마에 올려 재단하려 했던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쨌건 한국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자세히 보면 문제가 없다 할 수 없다. 책에서 다른 논리의 대부분은 훨씬 면밀한 검증을 거쳐야 했음에도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들로 서둘러 결론을 끌어낸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제대로 읽어가면 예리한.. 2023. 9. 10.
여운형은 왜 조선총독이 자신에게 권력을 이양했다고 했는가 여운형은 왜 조선총독이 자신에게 행정권과 치안권을 이양했다고 했을까. 8월 15일 이후, 일본의 해외 식민지가 일거에 무력화한 것은 조선만의 일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 비시 프랑스 정권이 무력화 기미가 보이자 일본은 베트남에 진주하여 이를 통제하기 시작했지만 1945년 8월 전쟁이 패전할 가능성이 보이자 일본의 현지 통제는 거의 무력화하였다. 이때문에 정치적 공백이 발생하였고 그때부터 연합군이 베트남에 진주하기 전까지 기간 동안 호치민의 베트민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고 선포한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1945년 8월 15일을 전후하여 조선총독부는 사실상 무력화하여 미군정이 진주하기까지 약 3주간의 공백기간이 발생하는데, 이 기간 동안 조선총독이 한인 유력자 등에게 치안공백을 줄이기 위한 협조를.. 2023. 9. 9.
해방군과 점령군 사이, 미군정명령 1호를 둘러싼 어처구니 없는 오역 최근 느닷없이 나오는 이야기 중에, 미군정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는 주장을 미군정명령 1호를 들어 하는 경우를 보는데,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이다. 미군정명령 1호 영어원문을 보면 이는 미군정의 대조선 협박문서가 아니라 미국 정부 특유의 색깔 없는 공문서다. 지금도 많은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공문서는 이런 반협박조 문장이 많다. 여기서 나오는 'Instrument of Surrender'를 한국이 미국에 항복한 것처럼 왜곡한 경우를 보는데, 영어가 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Intstrument of Surrender란 미국과 일본 사이에 조인된 항복 문서의 집행-관철을 의미한다. 아예 군정명령 1호 문서 첫머리에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친절히 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 2023. 9. 9.
프랑스가 문제였던 인도차이나 태평양전쟁 종전 후 전후 처리에 있어 인도차이나만큼 복잡했던 지역은 없다. 일본제국의 영토는 패전과 함께 공중분해 되었는데, 그 영토를 1914년 이전으로 되돌리며 조선은 따로 독립을 확약하여 분리하고. 미군정이 일본을 본격 통치하게 된 후, 일본영토에서 독도, 오키나와, 북방도서 등을 추가적으로 분리하였다 (이 영토들은 한국과 소련의 영토가 되거나 주민투표에 의해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조선은 여운형과 건준, 그리고 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저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간에, 일본 패전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군정을 거쳐 3년만에 독립하게 된 것은 카이로-포츠담 선언의 확약대로 운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후 조선에 공포된 맥아더의 미군정의 군정명령 1호를 보면, Having in mind the l.. 2023. 9. 9.
호치민에 투영한 건준 일본군 무장해제 후에는 어떻게 될지 전혀 비전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베트남도 45년 8월 15일 이후, 힘의 공백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공백의 정도는 일본제국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조선의 경우보다 훨씬 강력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군대가 북쪽의 중국군과 남쪽의 영국군이라는 점에서 소련과 미군이 진주한 한반도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베트남이 45년 8월 15일 이후, 가장 두려워 한 것은 2차대전 이전 이 지역을 식민지배하던 프랑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비시정권 이후 드골의 자유프랑스가 연합국-승전국의 편에 섬으로써 베트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해방과 함께 추축국 일본이 궤멸되어 사실상의 식민모국이 공중분해 되어버린 조선과는 상황이 달랐.. 2023.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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