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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5

진실로 미친 시대였던 17세기 도대체 어떻게 하자고 그렇게 죽도록 미치도록 성리학을 팠을까. 어떻게 하자고 그렇게 중국도 없어져버린 고례古禮를 여기다 구현한다고 남들 안보는 책을 죽도록 봤을까. 17세기란 시대는 진실로 미친, 제정신이 아닌 시대였는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수천년, 수만년 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 최후의 날까지도, 한국인들은 17세기를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2023. 4. 18.
구리 공급지로서의 한반도 동남해안 삼국지를 보면, 변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國出鐵, ··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원삼국시대에 변한 지역에서 철이 났는데 이를 한과 예, 왜가 모두 가져다 썼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낙랑, 대방 2군도 이 철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 광물지도를 보자. 정확히 변진 지역에 바글 바글 몰려 있는 구리 광산이 보이는지? 이 지역은 실제로 조선시대-일제시대 계속해서 우리나라에서 구리가 가장 많이 나던 지역이었다. 변진 지역이 철을 공급하기 이전부터 이 지역은 한반도 전역에 구리를 공급하던 지역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속 공급지로서 변진 지역 역사는 어쩌면 청동기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고. 평양 일대 고조선도 여기서 구리를 대어 썼을지도 .. 2023. 4. 17.
한반도 금속광물 분포도 구리광산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데, 한반도 남해안에는 의외로 구리광산이 많다. 2023. 4. 17.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을 녹여 만들지 않았을까? 한반도 비파형동검은 원래 숫자가 그 정도였던 것이 아니라 그걸 녹여 세형동검을 만드는 바람에 남아 있는 숫자가 적어지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세형동검도 놋으로 만드는 그 무엇인가 위세품이 하나 더 나왔다면 지금보다 적은 수가 남았을지도 모른다. 세형동검 뒤에는 동검 계보가 끊어진 덕에 세형동검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가 남았을지도. 게다가 세형동검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 시기는 아직 놋그릇도 없고 불상도, 동종도 없던 시기다. 고물로도 쓰일 기회를 놓치고 무덤으로 들어간 것일지도. 2023. 4. 17.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을 구리 한반도에는 구리가 넉넉하지 않았을 만큼, 고물 청동은 녹여 다른 기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썼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구리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하겠다. 청동기시대에는 위세품으로 동검이나 거울의 모습으로 이용되었겠지만, 불교의 시대가 열리자 이전의 위세품들은 고물로 취급되어 절의 불상이나 동종, 기물들로 모습을 바꾸었을 것이다. 조선시대가 되어 억불이 되자 이번에는 절의 기물들이 줄줄이 녹여져 놋그릇이 되거나, 화폐경제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상평통보로 모습을 바꾸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통용한 상평통보에는 청동기시대에 동검이나 거울이었던 것이 불상이 되었다가 마침내 사람들이 쓰는 돈으로 모습을 바꾼 것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단.. 2023. 4. 17.
자원쟁탈전에서 본 숭유억불 숭유억불이 사상적, 정치적 동기에서만 검토되지만 사실 여말선초 이래 유가가 불가를 그렇게 탈탈 털었던 것은 그런 동기보다 경제적 동기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한된 자원을 놓고 두 집단이 쟁탈전을 벌인 것인데, 여말선초 이후 두 집단이 다 살아 남기에는 한반도 자원이 넉넉치 않은 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공존하던 두 세력은 제한된 자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그 최종 결과가 조선시대 내내 계속 되어온 불교수탈이 아니었나 싶다. 폐불은 중국사에서도 몇 차례 일어나긴 했는데 한국처럼 지속적으로 수백년간 계속된 적은 없다. 아마도 여말선초의 위기, 숭유억불, 그리고 과전법체제 출현은 모두 같은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때 한반도에 우리가..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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