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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4

대한민국의 50-70년대 (2): 해방직후 문맹률 한국인이 일제시대를 어떻게 경과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그 시대의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해방직후 문맹률이다. 경제성장률 등 지표는 "한국의 근대화"의 지표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이 제국의 2등시민으로 격하되고 일본인이 한반도 안에서도 절대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보다는 두 가지 지표를 봐야 한다. 첫째는 문맹률. 두 번째는 토지소유관계다. 이 두 가지가 각종 성장률 지표보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데 있어 훨씬 정확하다. 그 중에 첫 번째 문맹률을 보자. 해방직후 한국인 문맹률이 얼마였을 것 같은가? 일제시대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1930년 시점의 조선인 전체 문맹률은 73.95%였다. https://db.history.go.kr/download.do?level.. 2023. 3. 18.
대한민국 50-70년대의 추억: 기초의학의 경우 (1) 앞서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는 해부학교실에 대한 전시회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이번 전시회는 촛점을 50-70년대에 맞춘다. 이 시기는 우리 사학계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시대다. 50-70년대 전반부는 이승만 정권 시대에 극빈에 시달려야 했고, 60년대 이후는 전례 없는 고도성장기로 오늘날 한국 경제적 부의 기틀을 닦았지만, 두 시대 모두 민주주의가 결함되어 있던 시대로 엄중한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50-70년대는 그것만으로 설명하고 치워버려야 하는 간단한 시대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자꾸 제기되는 배경에는 50-70년대 대한민국사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도 한 몫 한다. 필자의 직장 이야기 몇 토막을 이.. 2023. 3. 17.
일본과의 정상화, 특히 학문의 경우 필자가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우리나라 대학은 일본대학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일본은 정말 너무 잘하는 연구자가 많았고, 한국은 너무 없었다. 비교 수준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면, 한국과 일본은 이제 그럭저럭 서로 비슷한 위치에서 대화가 되는 상황에 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필자 주변은 그렇다 이 이야기다. 일본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고, 중요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대등 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협력할 수준에 와 있느냐가 지금 우리의 거취를 결정하는 최우선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필자는 그렇다고 본다. 아마 대부분의 분야가 지금 필자의 생각과 비슷한 위치.. 2023. 3. 16.
일본학계가 디테일이 강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일본학계가 디테일이 강하다고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나라나 그게 정말 대단한걸 줄 알고 있는 그쪽 당사자나 양쪽 모두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생각해보자. 디테일이라는 건 소금과 같아서 음식 만들 때 들어가야 할 때 들어가야 하는 거고 또 들어갈 곳에 없으면 안되는 것인데, 음식에 소금 친다고 대단하다는 거 하고 똑같은 소리 아니겠나? 기본적으로 디테일이라는 게 어떻게 학문의 장점으로 거론될 수 있나? 그런 소리를 서구권 친구들에게 하면 아마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것이고 자세히 설명해주면 아마 픽 웃지 싶다. 음식에 소금쳐서 대단하다는 소린데, 양쪽 다 웃기는 놈들이라 하겠지. 디테일이라는건 학문을 한다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소금같은 것이고, 또 거기에 심취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디테일은 학문의 목적이 될.. 2023. 3. 16.
유럽형 일본사가 근대화를 만든 게 아니다 이런 설명이 유독 일본사에 많이 보이며, 지금도 일본사 교과서를 보면 서양사개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최종적인 일본사 서술 목적이 자주적 근대화가 성공한 절정에 자연스럽게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한 서술이다. 유럽사를 표준으로 놓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사를 여기에 끼워 맞추면서 나온 기술이라는 말이다. 이제 일본사의 민낯을 보자. 1860년 이전 일본사가 도대체 어느 구석이 유럽을 닮았다는 말인가? 일본이 한국 중국보다 나았다고 해도 그 차이는 미미했으며 사실 일본과 중국, 한국의 결정적 차이는 이르게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이나 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강화도조약이 등장하는 1876년까지도 일본은 변변한 산업시설 하나 없는 상태였다. 유럽과는 불평.. 2023. 3. 15.
일본은 왜 100년 전 성공하였는가 (1) 중국과 한국은 실패했지만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 100여 년 전 근대화 이야기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우선 일본은 뭔가 다른 역사였다는 주장. 1990년대 이전까지도 일본에서 많이 하던 주장이다. 필자도 대학 때 일본사를 읽어보고 감탄했다. 어떻게 이렇게 일본사는 유럽사와 거의 비슷할 수 있나! 일본은 아시아와 달랐고 유럽과 이렇게 비슷했으니 근대화에 성공한 것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사는 20세기 초반,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그때부터 뒤집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럽사의 사건과 하나하나 대응시키며 기술한 역사이다. 이렇게 기술하면 당연히 조선과 중국은 정상적인 역사가 아니므로 20세기 초반 식민지화는 필연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이 근대화에 비로소 뒤늦게 성공했다 해도 이것은 ..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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