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일제시대를 어떻게 경과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그 시대의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해방직후 문맹률이다.
경제성장률 등 지표는 "한국의 근대화"의 지표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이 제국의 2등시민으로 격하되고 일본인이 한반도 안에서도 절대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보다는 두 가지 지표를 봐야 한다.
첫째는 문맹률.
두 번째는 토지소유관계다.
이 두 가지가 각종 성장률 지표보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데 있어 훨씬 정확하다.
그 중에 첫 번째 문맹률을 보자.
해방직후 한국인 문맹률이 얼마였을 것 같은가?
일제시대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1930년 시점의 조선인 전체 문맹률은 73.95%였다.
https://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kn_051_0040&fileName=kn_051_0040.pdf
이러한 상황은 일제시대가 끝난 시점에서도 별 차이가 없어 광복직후 남한 지역 12살 이상 인구에서 문맹률은 78%였다고 한다.
https://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5734042
말하자면 일제시대를 경과한 직후에도 12살 이상 한국인 중 4명 중 3명은 글자를 못 읽었다는 것이다.
농담 같다면, 우리나라에서 공개한 자료 중 "한국전쟁 인민군 포로신문보고서"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한 것으로 아마 인터넷을 뒤져보면 나올텐데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따로 링크는 걸지 않겠다.
이 자료를 보면,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 양쪽 모두 학력 수준이 비슷했을 것이라 본다면, 그 당시 양쪽 군대는 "문맹군"이었다고 보아도 된다.
소학교 졸업생도 거의 없고 대부분 소학 교육 2-3년 정도가 주류이며 아예 학교도 안 가본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교육 수준으로는 애초에 경제성장률이 몇 프로, 일제시대에 근대화 어쩌고 하는 이야기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말이다.
글자를 못 읽는 사람들에게 열차 선로를 깔아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애초에 그 열차 선로 자체가 문맹자를 배제한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일제시대 조선반도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아프리카 국가에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시대에 이런 저런 투자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소리하고 똑같은 소리다.
*** 편집자注 ***
이 문맹율 문제를 역사를 한다는 자들이 매양 쉽사리 간과한다. 문맹율은 그만큼 역사를 바라보는 가늠자다.
해방 당시 성인 국민 10명 중 8명이 까막눈이었다. 이걸 끝장내고 까막눈을 소수로 만든 시대가 대한민국이다.
단군조선 이래 이런 날은 없었다.
이 문맹율에 내가 매양 예민한 까닭은 엄마 아부지가 까막눈이었고 그런 까닭에 매양 내가 아부지를 대신해 지금은 죽고 없는 병역기피자 형님한테 편지를 썼고, 그 답장을 매양 내가 읽어드렸으며 나아가 그것이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신동훈 선생이 이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다. 지금 비판을 쏟아붓는 총구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겨냥하지만, 실상 더 심각한 데는 그것을 비판하는 놈들이다. 이른바 민족주의 역사학을 겨냥하는 이 놈들이야말로 실은 역사의 배신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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