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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40

일본의 "里" 좀 전 김 단장께서 올린 포스팅에 아래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지도日本地圖에서 높이 몇 섬石이라고 한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10리를 1리로 삼는데 대개 동서로는 4000리이고 남북으로는 그것의 반이니 동서가 짧다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일본의 10리를 1리로 삼는다"는 대목이다. 일본은 10리가 4킬로가 아니고 1리가 4킬로이다. 따라서 일본 기록에서 리를 읽어야 할 때는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리가 이처럼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역사학에서는 각각 뭐라고 부른다던데 한 번 듣고는 잊어버렸다. 위서魏書 왜인전에 나와 있는 야마토 위치를 가리키는 리가 엄청나게 과장된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은데, 이것도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2022. 10. 12.
신라의 성, 조선의 성, 아전, 그리고 부실 공사 제목 그대로다. 앞에서 잘 쌓은 신라성을 봤다. 촌락문서가 실상을 반영한 장부로 아마 이 장부에 기반하여 부역을 설계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완성된 것이 신라의 성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요즘은 워낙 정비사업 후에 갑자기 유적이 최신식 건물이 되는지라 요즘 복원한 신라성들은 뭔가 과다한 복원사업의 결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필자는 삼국시대 신라가 쌓았다는 영월 왕검성 (정양산성)을 복원전 조사차 올라가 실견한 적이 있는데, 신라의 산성은 확실히 동시기 다른 지역의 성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 산꼭대기에 그 규모의 산성을 쌓은것도 그렇고. 막돌을 일정한 크기로 쪼개서 포개어 쌓은 모습 등 매우 인상적인 성이었다는 생각이다. 각설하고, 신라의 산성은 처음 축성.. 2022. 10. 11.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선은 아전들에게... 제목 그대로다. 나는 조선시대를 보며 풀지 못할 의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조선은 무슨 생각으로 향리(아전)들에게 엽전 한 푼 안주고 부려 먹을 궁리를 했을까? 놀랍게도 조선시대 아전은 자기가 아전 노릇한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도 돈 한 푼 받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전 노릇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미칠 노릇아닌가? 무료봉사를 대대로 하라니. 나는 그래서 춘향전의 이방만 보면 슬프다. 가렴주구를 조선시대 이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자들은 전후사정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라에서 하라 해서 일을 했는데 돈 한 푼 못받으니 남은 것은 삥 뜯는 방법, 횡령하는 방법 말고 생계수단이 뭐가 있으랴? 이 말은 내가 가끔 농담 삼아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거 알고는 있냐고 물어보는데 대부분 믿지를 않는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2022. 10. 11.
생활인으로서의 사무라이 사무라이 하면 툭하면 칼을 빼들고 할복하겠다고 설치는 괄괄한 무장을 연상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류의 사무라이가 역사에서 주류로 올라본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생활인으로서의 사무라이가 있을 뿐. 이때문에 전국시대에는 주군에 대한 충성심 없이 이탈을 밥먹 듯 하는 무사가 즐비했고 (그나마 붙어 있던 이들도 먹고 살자니 그런것이지 사무라이 정신? ㅋ 그딴 거 없었다) 에도시대에는 주어진 쥐꼬리만한 봉급을 수령하기 위해 악착같이 부업을 하는 하급무사가 천하에 가득했다. 메이지유신기, 사실상 변혁의 주동이 되었던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하급무사들. 메이지유신 주역에는 상급무사출신이 거의 없다. 상급무사 출신도 없는데 공가 출신은 있을 리가 없다. 간신히 먹고 살던 생활인 사무라이들이.. 2022. 10. 11.
고쿠다카(석고제)를 쉽게 이해 하는 법 에도시대 일본에는 고쿠다카(석고제石高制)가 있다. 위로는 쇼군의 직접 다스리는 천령부터 아래로는 사무라이 말단 관리까지 일년에 얼마를 산출하고 녹봉으로 받아가는지가 표기되었는데-. 쉽게 이해하는 방법을 써 본다. 전기밥통에 밥을 할 때 주는 자판기 커피 종이컵 만한 계량 컵이 있다. 이 계량컵의 크기가 정확히 1홉이 된다. 1홉은 일반인이 밥을 지어 먹을때 하루 두끼, 하루를 먹는 양이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전기밥통에 계량컵으로 한컵 밥을 하면 남자들 둘이 먹기에는 약간 양이 적고, 남-녀가 먹으면 딱 맞고 여자 둘이 먹으면 남는다. 대략 전기밥통 계량컵 한컵이 1홉이 되는데. 바로 하루에 한홉씩 1년을 먹을수 있는 양이 바로 1석이다. 따라서 1석이라 하면 사람 한 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 2022. 10. 11.
신라장적문서에서 신라의 산성을 본다 삼국시대 말, 신라의 땅에 만들어진 산성들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정밀함, 규모, 군사적 입지,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탁월하게 보인다. 당시 정립한 삼국이 모두 비슷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규모의 정밀한 산성이 구축된것은 아마도 신라땅이 확연했던 것 같고, 이런 추세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런 산성이 만들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판도안에 존재하는 촌락민에 대한 엄정한 파악이다. 인구와 생산력이 정확히 파악되어야 성을 쌓던 군사를 만들던 했을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신라장적 문서를 본다. 현재 2종이 일본에서 파악된 이 문서를 보면, 인구부터 각종 생산물의 물량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어 신라의 "둠스데이북"이라 할만하다. 역사서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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