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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04

홍사준이 적은 1963년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의 사리기(홍사준의 1963년 기록) 1963년 12월월 중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세밀하게 실측할 기회를 얻었고, 몇 개 부분에서 의외의 새 사실을 알게 되어 소개한다. 1. 지대석 4면 외곽으로 돌린 석재는 지대석이 물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옥개석 모서리에 우동을 설치하였다. 3. 제4층 탑신 남측면 두께 13㎝ 판석으로 가린 사리공이 있음을 알았다. 당초 탑을 계획할 때 탑신의 높이 23㎝, 길이 60㎝, 폭 43㎝의 단형으로 사리공을 만들고, 그 내부의 네 모서리를 안쪽으로 둥글게 도려낸 모양이다. 유물은 없었다. 제4층 옥개받침이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어 일제강점기에 사리기는 분실된 것이 아닌가 한다. (홍사준) 홍사준, 1965, 부여 .. 2024. 3. 15.
과거를 보는 시점이 다른 서양과 한국 고고학 관련 발굴소식에서 흔히 나타나는 서구와 한국의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서양에서는 보통 어느 시대 어떤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제목에 내세우는 일이 아주 드물다. 대신 서구 언론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지금으로부터 얼마전 어떤 유적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식으로 전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거의 다 삼국시대 어떤 유물 유적, 구석기시대 어떤 유적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제목을 앞세운다. 둘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지금으로부터 얼마전 운운하는 제목은 그렇지 아니한 제목에 견주어 철저히 현재의 관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어느 시대를 앞세우는 제목은 말할 것도 없이 이른바 연구자 관점에서의 시각이다. 왜? 연구자한테는 지금으로부터 얼마전 .. 2024. 3. 14.
파르싸[페르세폴리스]에 나타난 이쉬타르 성문 파르싸(Persepolis)에 나타난 이쉬타르 성문 그림에 보이는 황소와 용 부조는 유명한 바빌리(Babylon)의 이쉬타르 성문 장식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부조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파르싸(Persepolis)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의 건축자들이 바빌리의 이쉬타르 성문을 본 따 만들었거나, 바빌리 건축자들을 동원하여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한다. Alireza Askari Chaverdi, Pierfrancesco Callieri, Emad Matin, "The Monumental Gate at Tol-e Ajori, Persepolis (Fars): New Archeological Data," Iranica Antiqua LII (2017): 251. *** 이상 .. 2024. 3. 14.
내치와 외치로 관부官府를 나누어 다스린 거란 국가로서의 거란이 어떤 통치체계를 마련했는가를 살피면, 내치와 외치를 부러 구별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경찰과 군대라는 현대 국가 관점에서 보면 내치란 말할 것도 없이 경찰 관련 사무요, 외치란 외부를 통제하기 위한 군대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체계를 일부러 나누어 다스리려 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하겠다. 무엇보다 거란은 그 주축인 거란족과 이런저런 이유로 유입된 한족漢族 중심 외부를 동시에 통제해야 했다. 이에서 두 가지 층위의 통제책을 쓰는데, 거란은 거란 본래의 유습에 기초한 방식을 쓰고, 한족은 한족에 중국식 통제 방식을 구사했다. 태종太宗에 이르러 중국 제도를 겸용하여 관직을 남南[중국]과 北[거란]으로 나누었으니 국제國制로 거란을 다스리고 한제漢制로는 한인漢人을 다스렸다. (요사遼史 권45.. 2024. 3. 14.
잃은 것은 글쓰기요 얻은 것은 각주다 내가 요새 틈나는 대로 노산 이은상을 읽는 중이다. 1903년생인가일 것이다. 노산은 직업적 학문종사자와 문필가 중간에 걸치는 사람이다. 이 세대 글쟁이가 거의 그렇다. 양주동이며 리선근이며 하는 인물들이 다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그런 까닭에 논문도 적지 않게 썼다. 한데 이들의 논문은 그 자체가 문학작품이라는 느낌을 다분히 받을 정도로 그 문체가 맛깔나고 유려하다. 혹 강건체 만연체가 많음에도 그 흐름이 방향을 받지 않고 무슨 물결과 바람에 의지에 배를 타는 기분이다. 이기백은 1924년생으로 안다. 벽사 이우성은 한살 적을 것이요 고병익은 1923년생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직업적 학문 시대를 본격으로 연 사람들이라 소위 잡문도 무슨 딱딱한 논문투를 벗어나지 못해 현미밥을 씹는 기분이다. 독특한 인물.. 2024. 3. 13.
화랑세기花郎世記의 세기世記 기紀는 근간이 記와 발음, 뜻이 같다. 그래서 세기世紀는 世記라고도 한다. 世紀 혹은 世記는 무슨 뜻인가? 순차별 전기라는 뜻이다. 순차는 무엇인가? 먼저와 나중을 구별하되, 먼저 무슨 직책에 있었던 사람을 앞세우고 뒤따르는 사람은 나중에 쓴다. 세가世家라는 말이 있다. 기전체 역사에서 이는 왕대별 주요 사건 일지다. 고려세가라 하면 반드시 그 순서는 초대 태조 왕건에서 시작해 순서를 밟아 마지막 공양왕까지를 기록한다. 세기가 무엇인지 이 세가를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화랑세기花郎世記가 있다. 삼국사기 김대문 열전에 그가 지은 책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한데 그것을 베꼈다고 간주되는 남당 박창화 필사본에는 그 제목이 花郎世紀다. 둘 사이 미묘한 표기차이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나 같은 말이다. 이 화랑세..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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