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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새 틈나는 대로 노산 이은상을 읽는 중이다. 1903년생인가일 것이다.
노산은 직업적 학문종사자와 문필가 중간에 걸치는 사람이다.
이 세대 글쟁이가 거의 그렇다.
양주동이며 리선근이며 하는 인물들이 다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그런 까닭에 논문도 적지 않게 썼다.
한데 이들의 논문은 그 자체가 문학작품이라는 느낌을 다분히 받을 정도로 그 문체가 맛깔나고 유려하다. 혹 강건체 만연체가 많음에도 그 흐름이 방향을 받지 않고 무슨 물결과 바람에 의지에 배를 타는 기분이다.
이기백은 1924년생으로 안다. 벽사 이우성은 한살 적을 것이요 고병익은 1923년생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직업적 학문 시대를 본격으로 연 사람들이라 소위 잡문도 무슨 딱딱한 논문투를 벗어나지 못해 현미밥을 씹는 기분이다.
독특한 인물이 1922년생 삼불 김원룡이다.
그는 수필가를 자처해 실제 많은 수필을 써서 그 전배들 흉내를 무진 내려했다.
한데 그 문체를 곰곰 뜯어보면 겉보기완 달리 문장 자체가 꺽꺽 하는 소리를 내기는 마찬가지다. 한데도 그의 글이 맛깔나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 세대들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그 전배들의 그것에 비하면 명함도 못내민다.
나는 이를 글쓰기의 퇴보로 본다.
글을 읽는 재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들 노산 시대 글쓰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학문이라는 너울이 착근하면서 이 땅에서 잃은 것은 글쓰기요 얻은 것은 각주다.
각주를 추방해야 하는 이유다. (2016.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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