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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5층석탑의 사리기(홍사준의 1963년 기록)
1963년 12월월 중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세밀하게 실측할 기회를 얻었고, 몇 개 부분에서 의외의 새 사실을 알게 되어 소개한다.
1. 지대석 4면 외곽으로 돌린 석재는 지대석이 물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옥개석 모서리에 우동을 설치하였다.
3. 제4층 탑신 남측면 두께 13㎝ 판석으로 가린 사리공이 있음을 알았다.
당초 탑을 계획할 때 탑신의 높이 23㎝, 길이 60㎝, 폭 43㎝의 단형으로 사리공을 만들고, 그 내부의 네 모서리를 안쪽으로 둥글게 도려낸 모양이다.
유물은 없었다.
제4층 옥개받침이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어 일제강점기에 사리기는 분실된 것이 아닌가 한다. (홍사준)
홍사준, 1965,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미술사학연구 47,48, 한국미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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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심상육 선생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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