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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53

요서지방의 이른바 진시황 행궁 글쎄다, 이걸 짓다 말았다는 말인가? 내 눈엔 아무리 봐도 다 지었다가 폭싹 내려앉은 건물지인듯한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강녀석유지姜女石遺址 중 석비지유지石碑地遺址 第Ⅲ區 第1組-單元F1及ㅛ1 : Y1 北文(東-西). 출전 遼寧省文物硏究所 編著, 《강녀석姜女石 : 진행궁유지발굴보고秦行宮遺址發屈報告》(下冊), 文物出版社, 圖版 149, 2010 (2011. 4. 26) *** 저걸 중국에선 소병기 이래 진시황제 한무제 행궁지라 개사기쳐놨다. 시황제가 저 근처로 한 번 갔다는 사기 봉선서 기록 딱 한 구절에 보이는 갈석궁이라 하고 저 출토 유물들이 동시대 장안의 그것들과 비슷하다는 두 가지 근거로 말이다. 갈석궁? 행궁지? 웃기고들 자빠졌다. 그 갈석궁이라 게 뭐 대단한 게 있는 듯이 말을 하지만 실상.. 2024. 4. 2.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4] 태胎를 목에 두르고 태어난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충남 서산瑞山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普願寺址에는 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碑이라는 고려 초기 비석이 있으니, 고려 초기 화엄종 승려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의 생애와 업적을 새긴 것이다.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는 물론이고 그 업적을 기술한 부분이자 몸통에 해당하는 비신을 완비된 비석으로 비신 전면 아래쪽이 약간 훼손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보존상태가 좋다. 그 곁에는 당연히 그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 있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글씨는 한윤韓允이 쓰고 김승렴金承廉이 새겨 그의 입적 후 3년 뒤인 고려 경종 3년, 서기 978년에 세웠다. 내용은 법인이 화엄을 배우고 태조가 시행한 승과를 주관하고 기도하여 광종을 낳게 했으며 재해에 반야를 강설하여 물리치기도 하고 화엄경을 사경하여.. 2024. 4. 2.
고려가 왕건을 기억하는 다섯 번째 방식 일전에 나는 고려 왕조가 그 건국주 태조 왕건을 기억하며 추숭하는 방식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었거니와 첫째 종묘 신주 안치 둘째 어진 봉안 셋째 소상 제작 넷째 현릉 배알 하나를 보강해야 한다. 물론 더 있겠지만, 그런 까닭에 더욱 보강해야겠지만 내가 하나 놓친 대목이 있으니 다섯째 태실胎室 이다. 내가 괜히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순화 4년명 청자 항아리를 태항아리라 했겠는가?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3] 이대박물관 왕건 청자는 그의 태항아리 2024. 4. 2.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3] 이대박물관 왕건 청자는 그의 태항아리 청자 순화 4년명 호 靑磁淳和四年銘壺, 죽은 왕건을 위한 봉헌물 청자 순화 4년명 호 靑磁淳和四年銘壺, 죽은 왕건을 위한 봉헌물 청자 순화 4년명 호 靑磁淳和四年銘壺 Jar with Inscription of "4th Year of Sunwha". Celadon 국보 제326호 National Treasure No.326 고려 993년 Goryeo 993 보물이었다가 2019년 5월 2일 국보로 승격했다. 이화여대박물관 historylibrary.net 골동상이 가져와 구입한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국보 청자 골동상이 가져와 구입한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국보 청자 1946년 4월 1일, 인천시립박물관 개관과 더불어 만 27세에 그 초대 관장으로 복무한 이경성은 1954년 3월 31일, 36세에 그곳을 사임하고.. 2024. 4. 1.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2] 모든 왕이 전국 각지에 만든 태실 태조 왕건이 태실을 조성했으므로, 이후 왕들 역시 자동빵으로 적절한 데를 골라 태실을 만들었을 것임은 불문해도 가지하다. 다만 그런 흔적이 몇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그런 편린이 있으니 고려사 지리2 경상도 안동부 기양현을 보면 명종明宗 2년(1172)에 태자의 태胎를 묻어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승격시켜 현령관縣令官으로 삼았다는 것으로 보아, 그 태실이 개성에서 아주 먼 안동에 만들었음을 보며 같은 지리地理1 양광도 안남도호부 수주 김포현金浦縣을 보면 신종神宗 원년(1198)에 왕의 태胎를 이곳에 묻게 되어 김포현으로 승격했다 해서 같은 양상을 보이며 같은 지리3 서해도 평주 동주에는 이곳을 원종元宗(재위 1259~1274)이다. 시대에 왕의 태를 묻은 곳이라 해서 서흥현령관.. 2024. 4. 1.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1] 태조 왕건의 태실 1. 고려 태실은 왜 중요한가? 한반도 태실 문화 전통을 논할 때 통일신라시대를 포함해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삼국시대 사례는 충북 진천 태령산의 김유신 태실이다. 이 태실은 이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그런 사실을 대서특필했다는 점에서 삼국시대에 안태安胎 장태藏胎 문화와 관련해 역시 대서특필해야 한다. 다만 통일신라 이전 태실 문화를 엿볼 만한 자료로는 거의 유일한 데다가 발굴조사가 이뤄진 것도 아니어서 여러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하나 이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김유신 태실 그 자체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러한 사실을 김부식이 대서특필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김부식 시대에는 태실 문화가 확실히 인지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불어 실물자료로써 현재까지 가장 확실한 태실은 놀랍게도 김유..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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