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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11

[제1차 고려거란전쟁] (7) 宋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거란에는 혼인까지 청하는 고려 나는 앞서 실리외교? 이딴 말 함부로 하지 말라 했다. 모든 국제관계 외교관계는 실리를 추구한다. 고려가 실리외교를 추구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인 까닭이다. 고려가 송과 거란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한다? 보자 이 관계가 어찌 되는지. 정식 국교를 성립하고,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기기로 한 고려는 후속 조치에 착수한다. 이를 위해 위선 전쟁이 있은 이듬해인 994년 4월에는 시중侍中 박양유朴良柔가 표表를 들고서는 거란으로 가서 정삭正朔을 시행하였음을 아뢰고, 사로잡아 간 백성들을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정삭이란 간단히 말해 우리 이제부터 거란의 시간을 쓰기로 했다는 말이다. 외교는 항상 주는 것이 있음 받아내야 한다. 이 경우에도 고려는 그 반대급부를 잊지 않았다. 포로로 잡아간 우리.. 2024. 3. 2.
망향휴게소 여명의 동상 우리는 줄기차게 전진한다. 초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위대한 사명감 속에서 보람찬 내일로 향하여 전진하는 우리들의 슬기와 힘을 집결하여, 새 역사를 이룩하려는 오늘의 단결 오늘을 불사르는 우리들의 열중 더욱 잘살기를 다짐하는 우리들이 의지 날마다 조국의 모습은 새로워지고 아침마다 더욱 찬란한 태양이 조국을 비쳐준다. 오늘 흘린 우리들의 땀 한 방울이 내일이면 -백배의 결실을 가져올 것을 확신하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영광된 조국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며 오늘의 축복속에서 영롱한 무지개가 뻗쳐있는 보람찬 내일로 우리들은 줄기차게 전진한다. 조각 강태성 글 박목월 글씨 서희환 1977년 3월 일 문화공보부 한국도로공사 세움 ***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망향휴게소 이 조각은 무심히 넘기다가 오늘에서야 명문을 보고선.. 2024. 3. 2.
[1차 고려거란전쟁] (6) 압록강이 경계로 확정되고 담판 결과에 따라 이제 고려 거란은 새로운 관계에 접어들었다. 그 이전 고려는 명목상 종주국을 宋을 삼았지만, 협약에 따라 이제 종주국을 거란으로 바꿔야 했다. 대신 고려는 여진이 점거한 청청강~압록강 유역 땅을 할양받았다. 두 군대가 철군한지 몇 달이 지난 고려 성종成宗 13년 2월, 거란에서는 저번 특사 겸 고려정벌군 총사령관 소손녕蕭遜寧 명의로 고려 조정으로 편지 한 통을 날린다. “근래에 황제의 명[宣命]을 받들기를, ‘다만 고려 신의와 호의로써 일찍부터 통교通交하였을 뿐 아니라 국토도 서로 맞닿아있노라. 비록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기는 데에 반드시 규범과 의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시작을 잘 궁구하여 마지막을 잘 맺는[原始要終] 길은 모름지기 〈우호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데에 있다 하.. 2024. 3. 2.
1933년 천연기념물 이전의 천연기념물 한국문화재사 흐름을 간취하면 1916년(대정大正 5)에 공포된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과 1933년(소화昭和 8) 8월 제령 제6호로 공포된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이 획기를 이룬다. 이 두 차례 법 정비를 통해 우리가 아는 문화재가 비로소 탄생하는 까닭이며, 저를 통해 마련한 골격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저를 통해 과연 무엇이 문화재인지 개념과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그 이전에는 무엇이 문화재인지 그 어떤 개념도 없었고 범주도 없었다. 특히 1933년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은 명칭이 시사하듯이 무엇이 문화재인지를 확실히 규정했다. 물론 문화재라는 말은 저때도 아주 간혹 보이기는 하는데, 훗날 저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착한다. 문제는 명승과 천연.. 2024. 3. 2.
AI로 증폭한 ‘요화妖花’ 배정자 친일파 연구자로 유명한 정운현 형이 마침 근자 여러 남자를 전전한 배정자라는 여인 이야기를 정리한 글을 올렸으므로 심심해서 요새 재미 붙인 AI 사진 증폭 기술을 이용해 과연 저 여성이 어떤 면모를 지녔기에 그리 식민지시대 어간에 그리 유명세를 구가했는가를 구명해 보고자 했다. 앞 사진이 그런 대로 젊은 시절 한창 주가 날리던 시절이라 해서 제공하는데 이걸 증폭해 봤다. 이렇게 복원한다. 좀 더 좋은 어플을 돌리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듯한데 이 정도로 만족한다. 다시 얼굴 누끼만 따보기로 했다. 아래와 같다. 전형적인 馬像, 말상이다. 저 시대에 쌍꺼풀 수술은 없었을 테니 자연산이라 보거니와 쌍꺼풀이 뚜렷하고 눈알맹이가 큰 편이다. 저 여인을 흔히 요부라 하고, 한국의 마타하리라 하는데, 그건 평자들 .. 2024. 3. 2.
[1차 고려거란전쟁] (5) 담대한 서희, 요동을 정벌하려 했다 세 치 혀로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서희는 이미 앞서 봤듯이 곧바로 소손녕과의 밀약에 따라 여진 몰아내기에 나섰다. 그 자신 문관이지만 사령관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먼저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 두 강 구간 개척에 나서 여진을 공략했다. 고려로서는 다행인 점이 당시 여진은 거란에 복속한 상태로 아직 중앙집권화한 권력이 출현하기 전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부족별로 할거한 상태라, 응집력이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자신들이 주인으로 섬기는 거란에서 그 개척을 나몰라라 한 까닭에 저항은 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몇년 사이에 순식간에 8개 성을 쌓으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사민까지 해서 둔전을 기반으로 확실히 이곳은 우리 땅이라는 발판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 점에서 서희는 최윤덕과 김종서의 직접 선..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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