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쓴 것처럼 필자는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의 시스템 자체가 조선인들에게 매우 불리한 제도로서 당시 조선인들은 그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한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필자가 여러 회에 걸쳐 연재한 교육제도다.
일제시대 교육제도처럼 그 당시 조선인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 당시의 교육제도는 조선인의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1930년대 이후 이미 일본은 교육수준이 생활수준과 밀접히 결부되는 시대로 들어가 배우지 못한 조선인은 신분 상승의 기회가 사실상 막혀 있었다는 말이다.
이 당시 조선의 소학교가 몇 개라는 식의 통계로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보는데
필자의 글을 꼼꼼히 봐 오신 분들이라면 왜 이런 식의 이야기가 불합리한지 파악하셨으리라 믿는다.
한국의 일제시대 연구는 현재까지도 시작도 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
일제시대 조선인이 사회의 바닥으로 깔리게 된 것은 총과 칼로 진행된 강제적 수탈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과 칼도 물론 식민통치의 수단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었고,
1920년대 이후는 일본으로서는 총과 칼로 그렇게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그 시대에 문화정치로 전환한 것은 3.1 운동으로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쪽 친구들이 굳이 그렇게 안 하고도 일본인의 우위를 유지하며 통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바로 1920년대 이후 고도화한 일본의 통치 구조시스템이다.
이 구조시스템은 돌리면 돌릴수록 조선인은 사회 밑바닥으로 깔려버릴 수 밖에 없는 일종의 '식민통치 머신'으로서 이 기계는 1945년 일제의 패망 당시까지도 작동한 것이다.
한국 학자들의 일제시대 연구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 규명에 들어가야 한다.
그 시스템 규명도 조선만 파서는 의미가 없다.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해방 때까지 일본제국의 시스템 전체를 완전히 이해해야 식민지 통치의 불합리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작업 없이 식민지 시대를 설명하자니 총과 칼을 들고 36년간 조선을 통치한 것으로 일제시대를 설명하지만, 막상 디테일에 들어가면 그런 컨셉과 맞지 않는 부분이 나와 전체적인 식민시기 연구의 구조물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일제시대 연구는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구조 규명 없이는 제대로 완성하기 어렵다.
일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일제시대에 대한 이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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