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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식민지 조선: 교육시스템의 확립

by 초야잠필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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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교육 시스템은 "무관심과 방기, 비우호적인 제도"로 정의할 수 있다. 

조선인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조선인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려 이를 바탕으로 근대화의 엔진으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설계였다는 뜻이다. 

식민지 조선의 교육시스템이 성립됨에 있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앞에 썼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 조선의 교육제도가 고등교육 졸업자를 배출하는 데서 극히 불리한 시스템이었다는 말이다. 

교육제도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대졸자가 양산되는 일본 본토와 달리 조선은 한 단계를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이는 조선인이 교육비를 부담할 재정적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제도 자체가 조선인에게 비우호적으로서 돈이 있더라도 상급학교 진학이 매우 불리한 제도였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조선의 교육제도가 정비되는 단계에서 이전에 존재하던 전근대적 교육기관 일체를 불법화하는 대신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전문학교로 상징되는 조선식 교육제도를 정비하는 데에는 소극적으로서 조선 땅에는 일종의 전환기가 존재하는데, 이 기간 동안 무학자를 대량 양산했다는 점이다.

1910년 국치이후 1920년대 후반까지 조선인들의 경우 거의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좋다. 그나마 불리한 교육조차 쉽게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만약 총독부가 조선인을 메이지시대 일본 정부가 일본인을 교육시키는 것과 같은 자세로 대했다면 서당과 성균관 등은 모두 소학교와 대학으로 전환한 다음 무자격자 학생들을 받아 어떻게든 대졸자를 양산해 내려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나라가 근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자가 양산되어야 하고, 가진 것도 없는 저개발국에서는 이 과정에서 자격미달의 학생과 부실 학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일본은 식민지 기간 내내 조선의 사학이 대학으로 승격하고자 하는 신청을 했을 때 '자격미달'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연전과 보전은 식민지 시대 내내 대학 승격을 희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이들이 대학으로 승격한 것은 결국 해방 이후에나 가능해졌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근대화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제도의 정비에는 정부의 호의적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저개발국 교육기관에 선진국의 잣대를 갖다 대면 승인이 날 학교는 하나도 없고 학생들은 죄다 자격 미달이 될 수 밖에 없다. 

요는 바로 그 정부가 그 국민에게 어느정도로 호의적인 정책을 펴고 있었는가 하는데 근대적 교육 시스템의 완성 여부는 달려 있었다고 본다면, 당장 내일 먹고 살 것도 없던 50-60년대에 도대체 무슨 돈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70년대에 거대한 대졸자 풀을 완성할 수 있었는가-.

역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부가 국민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 1930년대에는 이 학교는 중학 5년차부터 지원이 가능하였지만 설립초기인 메이지시대에는 정규교육 1년짜리도 나이만 차면 모두 지원하여 시험을 보게 했다. 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은 이러한 '자격미달에 대한 우호적 정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였다. 정부가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러한 자국민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해방 이후 수립된 정권 이후부터야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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