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3 동성왕과 함께 온 왜병 500인 잘 알다시피 동성왕은 곤지의 아들로 원래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차례가 아니었는데 개로왕 대에 한성백제의 멸망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게 그에게도 왕위에 오를 기회가 왔다. 왜에 있던 동성왕이 귀국할 때 그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 들어온 왜병이 있었는데 그 숫자가 일본서기에 의하면, 500명이었다. 눌지왕 때 "신라에 주둔"했다는 고구려병 100명은 애초에 속국 지배용으로 보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었던 셈이다. 눌지왕이 신라영토 내의 고구려병 100명을 죽이게 한 첫째 이유는 그렇게 해도 될 만큼 그들의 숫자가 미미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우리는 호태왕과 충주 고구려비의 내용, 신라가 고구려에 보낸 인질, 그리고 신라땅에 주둔했다는 고구려군만 보고 신라가 이때 고구려의 속국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때 신라가 인질을 .. 2024. 8. 15. 속국 신라에 보냈다는 고구려 병사 100명 흔히 4말5초 광개토왕의 남정 이후 고구려는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고, 군대까지 주둔시켰다고 한다.이 이야기는 일본서기가 출전이다. 한국사 기록에는 필자가 아는 한 관련 기록이 없다. 그 이야기 내용을 보면유명한 "수탉을 죽여라"라는 바로 그 이야기다. 귀환하는 고구려 장교가배웅하는 신라인에게니네나라 조만간 없어질 것이다 하니, 그 이야기를 신라왕에게 전해주어신라왕이 남아 있는 고구려 병사를 깡그리 죽여버리라고 했다는바로 그 이야기다. 그런데-.이 당시 고구려 군이 신라땅에 몇 명이 있었을 것 같은가? 백명이다. 이 이야기가 나와 있는 출전인 일본서기에 나와 있으니 수탉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말도 맞을 것이다. 고구려군의 신라주둔 이야기? 물론 필자가 아는 한 삼국사기에는 그런 이야기 없다. 이 이야기는 .. 2024. 8. 15. 에도시대 연구가 더 필요함 우리나라는 에도시대 연구가 더 필요하다. 에도시대를 모른다는 건 조선을 모른다는 거고, 조선을 정확히 모르니왜 망했는지 진단도 안 되는 것이다. 왜 망했는지 진단도 안 된다는 건망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또 한번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사를 보면, 가마쿠라 시대 이후 한국과 일본은 상당히 다른 역사의 행로를 겪었지만, 사실 그 차이라고 해 봐야 별 것 없고, 결국 에도시대 이후에야 양국 사이에, 질적 양적 차이가 발생하여 두 나라 수준차가 현격히 벌어져그 최종 결과는 불행하게도 조선의 식민지화로 이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을 파는 노력의 10분의 1만 일본 에도시대 연구에 한국학계가 매진해도, 조선 후기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근세사에 있어 에도시대에 대한 이해는 .. 2024. 8. 15. 광개토왕의 대업적은 왜 사서에 수록되지 않았을까 "일차사료"인 광개토왕비 내용 중 왜 삼국사기에 빠진 부분이 많을까. 그것도 광개왕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백제, 신라, 가야 방면의 남방원정은 완전히 그 내용이 빠져 있다. 흔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그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고구려의 관찬사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광개토왕비의 찬란한 업적은 삼국사기에서 왜 대충 생략되어 있을까. 이를 "일차사료"인 광개토왕비의 내용이 원래 사실이지만, 삼국사기가 채록되는 과정에서 "누락"되었다고 보아야 옳을까. 그런데-. 사실 이상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일본서기에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기억이 불완전하나마 실려 있는데, "신라"를 쳐들어간 왜병의 기억은 있지만, 개로왕대 함몰 이전 고구려와 싸운 왜병의 기억은 없다. 광.. 2024. 8. 14. 한글시에는 왜 운율이 없는가 이건 오래전부터 의문이었다. 문학계에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모르겠고,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느끼는 한글시의 문제점을 몇 개 들자면, 첫째, 아예 없어진 운율. 둘째. 지나친 작자의 조어(neologism). 세째. 사상적 경직성. 쉽게 말해, 형식 면에서는 지나치게 자유롭고, 사상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운율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글의 성격상 운율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렇다면 요즘 나오는 한글 힙합의 라임은 뭐라는 말인가? 텅 빈 방엔 시계소리지붕과 입 맞추는 비의 소리오랜만에 입은 코트 주머니 속에 반지손 틈새 스며드는 memory며칠 만에 나서보는 밤의 서울고인 빗물은 작은 거울그 속에 난 비틀거리며 아프니까그대 없이 난 한 쪽 다리가 짧.. 2024. 8. 14. 호태왕비 이전에는 별 볼 일 없던 광개토왕 광개토대왕은 이제는 일약 한국사의 알렉산더 대왕쯤 되는 대정복군주로 되어 있지만, 이것도 19세기 후반 일본에 의해 호태왕비가 확인되면서 생긴 개념으로 호태왕비 이전에는 광개토대왕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할 것이다. 호태왕비 이전 광개토왕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었을 것은 당연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에 대한 업적일 텐데, 여기 보면 廣開土王,諱談德,故國壤王之子。生而雄偉,有倜儻之志。故國壤王三年,立為太子。八[10]年,王薨,太子卽位。秋七月,南伐百濟,拔十城。九月,北伐契丹,虜男女五百口,又招諭本國陷沒民口一萬而歸。冬十月,攻陷百濟關彌城。其城四面峭絶,海水環繞,王分軍七道,攻擊二十日,乃拔。 二年,秋八月,百濟侵南邊,命將拒之。創九寺於平壤。 三年,秋七月,百濟來侵。王率精騎五千,逆擊敗之,餘寇夜走。八月,築國南七城,以備百濟之.. 2024. 8. 13.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3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