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의 사전은 지금 한국사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공공의 악이 아니었다.
무슨 소린가 하니 그 당시 사전은 딱 불교 정도의 욕받이였다는 말이다.
여말선초 불교를 공격하면서 하는 것도 없이 염불만 하며 곡식만 축낸다, 이것인데 이거야 불교만 그렇겠는가?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 할 것이다.
이걸 공격을 한다면 지금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찬란한 불교문화는 어떻게 나오겠는가?
사전私田이 그렇다.
사전 대신 공전公田이 정의다, 라고 하는 게 지금 한국사의 스탠스다.
아니다,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한국사를 한 번 들고 읽어 보기 바란다.
당시 사전을 쓸어버리고 공전 일색으로 만든 과전법체제, 이것을 찬상하며 조선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옹호한 것이 현재 한국사 기술이다.
한국사에서 사전은 딱 불교 정도의 스탠스다.
공공의 적? 무슨 공공의 적. 당시 사전이 없는 나라가 없었는데.
사전을 없앤다고 해서 정작 논 일하고 밭 갈던 농민들이 그 혜택을 바로 받은 것도 아니다.
과전법은 그 역사적 의미부터 뿌리부터 뒤집어 다시 봐야 한다.
그 첫 번째 작업은,
주변 국가-중국과 일본이 그렇다면
그 나라들에서는 사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었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일본은 중세를 거치면서 전국의 땅이 장원 중심으로 편제되어 걔들도 송곳 하나 꽂을 곳 없기는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덴노天皇의 장원정리령荘園整理令을 그 누구도 역사적 순리라고,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나간 물, 흘러가버린 물이기 때문이다.
사전은 불교와 더불어 여말선초에 급조된 욕받이 들이다.
사전과 불교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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