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고려는 귀족사회인가 고려는 조선시대와 다른 "귀족사회"라고 보는 시각이 현재 주류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과연 "귀족사회"가 도대체 뭘 말하는가 하는가 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다. 신편한국사의 "귀족사회"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를 귀족제사회로 보려고 할 때 이에 대해서는「家門·門閥이 좋은 사람들」을 귀족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회를 곧 귀족사회로 이해하였으며, 또 身分制社會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 이같은 사회에서의 지배신분층을 귀족이라 보고 이들을 중심으로 말할 때에 그 사회는 곧 귀족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귀족은 ‘일반 인민과 구별되는 신분적·정치적 특권이 주어진 가족에 태어난 인간’ 또는 ‘신분제사.. 2023. 7. 26.
통일은 젊은 세대에게 물어보라 필자의 생각으로는 나이든 세대는 통일 여부, 방식에 대해 강한 의견을 낼 자격이 없다. 지금 상태에서는 통일이란 남한에 거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게 되는데 그 고통은 젊은 세대가 다 짋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금제도나 통일이나 결국 본질은 마찬가지다. 돈이다. 통일은 민족감정이나 당위성의 문제가 더이상 아니다. 통일은 돈의 문제, 경제의 문제가 된지 이미 오래다. 남북한 문제를 이데올로기 문제로 보는 건 우리나 그렇고, 전 세계는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을 제1세계와 제3세계로 본지 오래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통일을 할 건지 말 건지, 한다면 어떤방식으로 할 건지는 젊은 세대야말로 결정할 자격이 있다. 늙은 세대는 통일을 결정하고 그 타격을 받기 전에 세상을 뜰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 2023. 7. 25.
80년대 사회과학 출판물과 종로서적 앞선 글 종로서적에 대한 글에서 판금물에 대한 기억을 조금 적어둔다. 이 글에서는 4.19부터 90년대까지의 기억이 혼재하여 있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전시된 책은 필자 눈에도 익은데 주로 80년대에 읽힌 책으로 기억한다. 공산주의운동사나 러시아철학사 같은 건 80년대에는 "사회과학서적"이라 불렀는데, 이때쯤 되면 이미 필자 기억으론 종로서적에서는 판금서적은 안 팔았다. 종로서적은 필자가 대학생이던 80년대 중반에는 이미 "금지도서 판매업"에서 손 씻고 양지에만 있지 않았나 싶다. 일단 80년대 중반까지도 전경들이 수시로 가방을 열어 검문을 했기 때문에 종로바닥까지 저런 책을 사러 나갈 리도 없고, 내 기억으론 사회과학서적들은 각 대학마다 이런 책만 전문으로 파는 책방들이 있었다. 이런 책방은 필자 또.. 2023. 7. 24.
한국의 사적 기록 말살의 역사 한국은 유구한 지적 전통이 있는 나라다. 문자 사용의 흔적만 해도 한반도에서만 2000년이 넘고 과거제를 천년이나 시행할 저력이 있었고 엄청난 양의 불교 목판 대장경을 여러 차례 조판하고 또 조선시대에는 실록, 승정원일기등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는 또한 유구한 사적기록말살의 역사이기도 하다. 실록작성의 종료와 함께 이루어졌던 세초는 필화를 막고 종이를 절약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실은 방대한 사적 기록의 말살이기도 하다. 당대에 사찬하여 남긴 수많은 개인의 역사 기록들은 자가검열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런 전통이 축적되고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기록의 차이다. 일본은 육국사 이후 관찬서가 없다. 모두 사찬서이다. 그리고 역사기록은 개인기록이 풍부하게 이용된다. 많은 .. 2023. 7. 24.
조선 서학은 순교사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조선서학사를 순교사관에 따라 해석하니 실체가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다. 조선 서학자들이 어제까지 성리학을 믿다가 오늘 서학서를 읽고 하루 아침에 정통 기독교신자로 홀라당 바뀌었으리라 보는가? 실상은 그와 달랐을 것이다. 조선서학사를 천주교 순교사에서 해방하여 한국철학사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특히 서학을 유교사의 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서학을 순교사관에 묶어두니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종교의 영역에 역사가 머물고, 그 안에 존재했을 다양한 유학과 서학의 대화와 갈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학은 종교사가 아니다. 천주교의 전유물로 놔둬서도 안된다. 인간사를 종교사의 영역으로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을 왜곡이라 부른다. 선교사가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감화.. 2023. 7. 23.
조선후기, 서학은 "이단 유학"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바보였다는 말인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선비들의 고도의 사유에 공감하는 바 많아진다. 조선 후기의 선비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일본 고학파 같은 "이단유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성리학"을 묵수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망할 때까지 간 것일까? 유심히 당시의 사상의 흐름을 보면 눈에 띄는부분이 있다. 바로 "서학"이다. 고도의 성리학 교육을 받은 유학자들이 어느 아침에 홀라당 서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사도 없이, 전해진 책만 읽고, 교황은 이 "선교사도 없이 교회가 일어난 것을 듣고" 기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에 있어 서학이란 "근대성을 갖춘 이단 유학"이었던 셈이다. 성리학의 .. 2023. 7. 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