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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1945년 6월 현재: 태평양전쟁 종료 2개월 전 한국 해방전후사의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태평양전쟁을 제대로 따라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1945년 6월 현재 미국 라이프지에 실린 전황도다. 사람 모양 그림 하나가 1개 사단이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일본 본토와 만주의 관동군이 몇 개 사단이 이때까지도 남아 있었는지 보기 바란다. 이 지역에만 일본군이 아직 100만명 (100개사단)이 남아 있었다. 이 지도를 보면, 왜 미국이 소련에게 만주지역으로 밀고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상황 대로면 미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했을 때 사상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계산도 안 되는 판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4년 6월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은 이미 소멸하여 사라지고 그 잔여 병력은.. 2023. 6. 25.
해방 후 위상이 바뀐 고보와 중학 조선에는 일제시대 중등교육과정에 중학과 고보 둘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썼다. 이중 중학은 대개 일본인들이 다녔고, 고보는 조선인들이 다녔는데, 1922년 2차 조선교육령 이후 5년으로 동일한 학제가 되었다. 중학과 고보는 학생 구성원에 차이가 있고 한참 배우는 젊은 학생들이라 양자간 상당한 알력과 경쟁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일제시대 조선인 1고보, 2고보, 3고보를 자임했던 세 학교 (경성고보, 평양고보, 대구고보)의 이야기를 좀 적어보고자 한다. 일제시대 대도시에는 대개 같은 이름의 중학과 고보가 같이 있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에는 경성중학 (일본인)과 경성1고보 (나중의 경기고), 경성2고보 (나중의 경복고)가 있었고, 평양에는 평양중학 (일본인)과 평양고보 대구에는 대구.. 2023. 6. 25.
2차대전의 전개와 해방전후사 물론 우리의 운명을 다른 나라들이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2차대전은 뚝 잘라서 버려버리고, 2차대전 이후 해방된 이후만 잘라 항복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미군을 점령군 운운은 웃기지도 않는 논리이다. 어제까지 일본제국 조선총독부 관할이던 지역을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서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민의를 수렴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건준과 인공을 들이대며 이것을 한국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면 미군은 점령군-정복자라고 우겨댄다면, 그런 논리가 어디있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1937-1945년까지 세계대전의 이해가 가장 우선적이며 그 안에서 한국의 독립을 설명해야 한다... 2023. 6. 24.
해방전후사와 한국전쟁의 기원 기본적으로 이 두 책은 실증적인 연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팩트의 해석 자체가 문제가 있는 책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크게 보아 내용이 아래 세 가지다. (1) 이승만 욕 (2) 건준 옹호 (3) 토지개혁의 해석의 편파성. 남한의 "유상몰수 유상분배"에 대한 왜곡. (1)과 (2)는 통해 있고, 당연히 미군정 욕으로 이어진다. (3)은 그 후 사구체 논쟁에서 이른바 남한사회를 식민지반봉건사회로 보는 NL의 세계관의 남상을 이루는 것이다. (3)은 이미 남한의 선진국 진입과 북한의 거지화-몰락에 의해 뻥이란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부연할 필요 없다. (1)과 (2)가 문제인데, 이 논리가 먹히려면 한 마디로 전술한 바와 같이 2차대전 종전 이전까지 미군의 역할을 일체 무시하고 리셋하지 않으면 불가능.. 2023. 6. 24.
일본의 조건부항복과 카이로선언 아주 간단한 질문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동향분석이 한 번도 없었다. 필자의 짐작이지만, 일본이 시도하려 했을 "Conditional Surrender"에는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는 내용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일본이 핵심이익을 모두 포기한다고 할 때 재기의 발판은 결국, 조선, 대만의 영유와 천황제유지, 그리고 미군의 일본 진주 거부, 자발적 무장해제 등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전 말 태평양일대에서 계속 완강히 저항하면서 저 조건부 항복을 끊임없이 들이밀었을 것이라 보는데, 저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차대전 중 한국의 독립이 공식화 된 것은 카이로선언의 다음 문구이다. We are mindful of the treacherous enslavement of t.. 2023. 6. 24.
일본의 "무조건" 항복 워낙 일본의 항복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무조건"이라는 말에 우리는 둔감하기 쉬운데, "무조건"이라는 말은 "조건부 항복"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본이 질 때 지더라도 미국에게 관철하려 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거 안 받아 주면 니네도 우리만큼 죽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미카제이건 반자이어택이건 옥쇄이건 나오는 건데. 그 "조건"이 과연 무엇이었을지 이것도 한 번은 우리로서는 궁금해 할 만한 일이다. 왜 얄타협정의 소련군 참전 밀약만 궁금해 할까? Three members held out for three additional terms: Army Minister General Korechika Anami and the Chiefs of Staff of the Army,..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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