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일본의 항복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무조건"이라는 말에 우리는 둔감하기 쉬운데,
"무조건"이라는 말은 "조건부 항복"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본이 질 때 지더라도 미국에게 관철하려 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거 안 받아 주면 니네도 우리만큼 죽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미카제이건 반자이어택이건 옥쇄이건 나오는 건데.
그 "조건"이 과연 무엇이었을지 이것도 한 번은 우리로서는 궁금해 할 만한 일이다.
왜 얄타협정의 소련군 참전 밀약만 궁금해 할까?
Three members held out for three additional terms: Army Minister General Korechika Anami and the Chiefs of Staff of the Army, General Yoshijiro Umezu, and Navy, Admiral Soemu Toyoda. These additional terms included: 1) Japan would disarm her own forces; 2) Japan would conduct any “so-called” war crimes trials of her own nationals; and 3) there would be no occupation of Japan. This last term would assure the continuance of the Imperial system and Hirohito’s seat on the throne.
(미국국립2차대전박물관에서)
https://www.nationalww2museum.org/war/articles/japans-surrender-military-coup-1945
일본이 바보라서 어차피 질 전쟁인데 가미가제도 날리고 자폭잠수함도 날리고 섬에서 옥쇄하고 했던 게 아니다.
이들은 원래 미국에 "조건부항복"을 하려 했고, 조건부 항복의 조항을 보면 만주국 성립 이전의 상태로 돌리는 (한국과 대만은 식민지로 유지하는) 수준의 항복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유동적인 상황에서 "무조건항복"을 선택하고 소련의 참전을 요청한 것이 "미국의 배신"일까?
조선인이 미군에 소속되어 참전한 사람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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