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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본의 "무조건" 항복

by 초야잠필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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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조건" 항복. 일본은 원래 무조건 항복을 하려했던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생각대로 미국이 사상자를 두려워하여 적당히 타협하여 항복을 조건부로 수락하려 했다면 조선은 독립을 못할수도 있었다.


워낙 일본의 항복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무조건"이라는 말에 우리는 둔감하기 쉬운데, 

"무조건"이라는 말은 "조건부 항복"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본이 질 때 지더라도 미국에게 관철하려 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거 안 받아 주면 니네도 우리만큼 죽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미카제이건 반자이어택이건 옥쇄이건 나오는 건데. 

그 "조건"이 과연 무엇이었을지 이것도 한 번은 우리로서는 궁금해 할 만한 일이다. 

왜 얄타협정의 소련군 참전 밀약만 궁금해 할까? 

Three members held out for three additional terms: Army Minister General Korechika Anami and the Chiefs of Staff of the Army, General Yoshijiro Umezu, and Navy, Admiral Soemu Toyoda. These additional terms included: 1) Japan would disarm her own forces; 2) Japan would conduct any “so-called” war crimes trials of her own nationals; and 3) there would be no occupation of Japan. This last term would assure the continuance of the Imperial system and Hirohito’s seat on the throne. 
(미국국립2차대전박물관에서) 

https://www.nationalww2museum.org/war/articles/japans-surrender-military-coup-1945

"To Bear the Unbearable": Japan's Surrender, Part II | The National WWII Museum | New Orleans

Although a decision to continue the war would mean national suicide, members of the Japanese military came close to refusing Emperor Hirohito’s surrender order.

www.nationalww2museum.org


일본이 바보라서 어차피 질 전쟁인데 가미가제도 날리고 자폭잠수함도 날리고 섬에서 옥쇄하고 했던 게 아니다. 

이들은 원래 미국에 "조건부항복"을 하려 했고, 조건부 항복의 조항을 보면 만주국 성립 이전의 상태로 돌리는 (한국과 대만은 식민지로 유지하는) 수준의 항복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유동적인 상황에서 "무조건항복"을 선택하고 소련의 참전을 요청한 것이 "미국의 배신"일까? 

조선인이 미군에 소속되어 참전한 사람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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