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방전후사의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태평양전쟁을 제대로 따라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1945년 6월 현재 미국 라이프지에 실린 전황도다.
사람 모양 그림 하나가 1개 사단이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일본 본토와 만주의 관동군이 몇 개 사단이 이때까지도 남아 있었는지 보기 바란다.
이 지역에만 일본군이 아직 100만명 (100개사단)이 남아 있었다.
이 지도를 보면, 왜 미국이 소련에게 만주지역으로 밀고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상황 대로면 미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했을 때 사상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계산도 안 되는 판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4년 6월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은 이미 소멸하여 사라지고 그 잔여 병력은 이미 소련으로 밀려가 있었다.
임정은 국민당 정부를 따라 중국 내륙을 계속 이동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한 한반도와 만주일대에서 독립운동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이 바로 "학병"으로 다수 학생이 끌려간 시기다.
중국 본토에 보면 다수의 일본군 사단이 존재하는데 조선인 학병들은 이곳에 배속되었다가 많이 도주하였다.
장준하, 김준엽 등도 바로 여기서 도주하여 광복군에 투신했다.
이 전황을 조선인으로서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었다.
조선에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으로 알렸던 내용이 바로 이러한 전황이다.
해방전후사?
독립운동?
2차대전을 일단 판을 깔아 놓고 하나 하나 퍼즐을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독립운동사가 되었건 해방전후사가 되었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당시의 싸움은 우리 독립운동가들과 일본제국의 싸움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독립도 독립운동가와 일본제국의 싸움의 결과로 온 것이 아니라
위 전황도에서 보듯이 미국과 일본의 전쟁의 성패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미군은 100만이 넘는 일본본토군 관동군을 하나 하나 쓰러뜨리기 보다는
결국 원자탄을 선택했고, 위 전황도에서 불과 2개월 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된다.
P.S.1). 당시 조선과 만주땅에 살던 조선인들은 독립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이기는지 지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1945년 8월에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P.S.2) 광복이 어떻게 도래한것인지 그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해방전후사가 제대로 보인다. 이는 독립운동이 훌륭한 일이냐 아니냐 하고는 별개 차원의 이야기다.
독립운동은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방전후사를 2차대전의 전황을 무시하고 우리 맘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해방 국면에서 우리 한국인의 역할은 주도적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점을 애써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승만이 바보라서 미군정에 보조를 맞추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P.S.3) 위 전황도를 보면 미국이 소련에 참전을 요청해 달라고 한 것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당시까지도 만주의 관동군은 위 전황도만으로도 50개 사단이 남아 있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미국의 배신"운운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P.S.4) 저로부터 2개월 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자 조선땅에서 어느날 갑자기 "조선인의 나라"를 만든다며 미군은 진주도 안했는데 총독부한테서 인수인계 받았다고 주장하는 "전국 조직"이 나왔으니 그게 바로 "건준"이다.
이게 이해가 가는 행동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분들 판단에 맏긴다.
이 "건준"은 미군정의 포고령 1호가 나오기 하루 전인 9월 6일에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을 수립한다고 발표했다.
2차대전의 전황과 일본의 패망과정을 숙지하면 당시 "건준"이 "인공"으로 폭주하는 과정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자명하다 하겠다.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43년까지 2차대전 전황과 조선의 상황 (0) | 2023.06.26 |
---|---|
세계사와 한국사 (0) | 2023.06.26 |
해방 후 위상이 바뀐 고보와 중학 (0) | 2023.06.25 |
2차대전의 전개와 해방전후사 (0) | 2023.06.24 |
해방전후사와 한국전쟁의 기원 (0) | 2023.06.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