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일본 육군 대본영의 1945년도 군령 일본육군 대본영이 1945년 2월 6일에 육군 전군에 발송한 통첩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아래 소개한다. 내용 중 읽어 볼 만한 부분에는 영어 번역을 따로 붙였다. 내선일체가 어쩌고, 조선인의 수준이 저열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다 생략하고 내용만 간단히 요약하면: 1. 조선인 지원병들이 자주 도망간다. 특히 학군으로 뽑은 조선인들이 불온하다. 자꾸 주변을 선동한다. 2. 조선인과 일본인 병사들 사이에 융화가 잘 안 된다. 3. 조선인 병사가 융화가 잘 안 되는 이유는 국어 (일본말) 이해하는 사람이 30프로가 안 된다. 지금 어쩔 수가 없으니 일단 국어를 가르쳐라. 여기서 알수 있는 건 당시 지원병과 학병에서 도망자가 많았다는 점. 일본인과 조선인 병사 사이에 융화가 잘 안되었다는 점. 그리고.. 2023. 6. 12. 학병 소위 임관은 합법적이었을까? 학병으로 끌려간 양반들이 예비사관으로 있다가 1945년 8월 경에 원래 정식 소위 임관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시기 공통적 증언의 하나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9월 경에 일본군이 해산 하면서 소위 계급장을 주고 해산시켰다는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9月2日:日本政府が戦艦ミズーリで降伏文書調印。GHQ指令第一号(陸海軍解体、軍需生産の全面停止等)が出る。 라 해서 1945년 9월 2일 일본 정부가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과 동시에 연합군최고사령부 (GHQ) 명령 제1호로 일본군 육해군 해체 명령이 하달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중국 방면 등지에서 일본군 해산과 함께 학병들에게 달아주었다는 소위 계급장이 합법적인 소위는 맞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 2023. 6. 12. 일제시대의 지식인: [30] 현승종 현승종 선생은 학병 출신으로 해방 당시 일본군 소위 신분이었다. 귀국하여 고려대 교수, 성균관대 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노태우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개천공립보통학교 (6년) -- 평양고보, 평양제이중 (1933-1938) -- 경성제대 예과 (문과을류) (1938-1941)-- 경성제대 본과 (1941년 3월-1943년 9월) 선생의 경력에서 경성제대 예과까지는 빈 해 없이 전개되다가 경성제대 본과 졸업을 6개월 당겨 1943. 9월에 하게 된다. 전쟁 말기에 대학과 전문학교 졸업이 6개월씩 당겨진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위 기록에서 평양고보는 평양제이중과 같은 것이다. 3차 조선교육령이 발효되어 평양고보가 중학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평양중을 피해 평양제2중이 되었다. 선생의 기록에서 흥미로운.. 2023. 6. 12. 일제시대의 지식인: [28] 김계원과 [29] 김영환 학병 출신에 대해서도 언젠가 자세히 써야 할 것이다. 해방 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계원과 공군 준장으로 순직한 김영환 양 장군은 두 사람 모두 학병 출신이다. 학병출신이라는 이름을 생소하지 않지만 이것처럼 오해가 많은 부분도 없다. 오해가 많으니 개인에 대한 평가도 들쭉날쭉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학병인데 항일운동급으로 추앙되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학병인데 친일파 급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개인적 호불호가 평가에 개입한 탓이다. 학병은 그 자체는 70년대 강제징집이나 80년대 전방입소 등과 다를바가 없다. 원해서 간 것은 당연히 아닌데 학병이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끌려간것인지 온라인 상에는 제대로 정리된 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제대로 된 팩트의 확인부터 필.. 2023. 6. 11. 1876-1945: 계속 표변한 일본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이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1876-1945년까지의 일본의 국력과 실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시종일관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적 수준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의 수준을 달리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 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한국사에서 보는 일본은 주구장창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1876년 조선의 개항당시 일본의 국력은 제국주의와는 당연히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당시 수준이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2023. 6. 11.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필자의 글도 이제 중반을 넘어선다. 여기서 지금까지 쓴 글에 비추어 잠시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보통학교 입학률과 경제성장률로 일제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일제시대 말로 갈수록 더 커지는 고등 교육수준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대에 상당수 일본인이 조선땅의 경제활동 상층부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조선인의 성장을 반영한다 할 수 있는가? 만약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은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 것인가? 통계학에는 심슨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2023. 6. 10. 이전 1 ··· 214 215 216 217 218 219 220 ··· 3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