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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80

동아시아를 뒤흔든 당시唐詩의 정신 당시가 멀리 일본의 와카에 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 와카는 5 / 7 / 5 / 7 / 7 이라던가 형식이 어떻다던가 하여 두 시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친다면 동아시아 20세기 초 각국의 국문시와 국문소설에 불었던 서구 문학의 정신은 그 형식과 문자가 동일해서 그 영향력을 인정하였겠는가? 당시는 당나라의 문사가 시를 쓰는 붓을 놓는 순간 한국을 넘어 일본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져 문단을 뒤 흔들었고, 그 미묘한 찰나의 정신,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마음의 미묘한 부분을 시어화하는 절묘함을 자신들의 문학에 담아 낸 것 중의 하나가 결국 일본의 와카라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미묘한 심리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와카는 당시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동아시아 최.. 2023. 7. 29.
왕유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이 두 노래는 서로 통한다. 당나라 왕유: 〈雜詩〉 王維 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綺窗前 寒梅著花未 왕유가 고향에서 온 친구에게 고향집 매화가 피었더냐고 물어보는데-. 일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東風吹かば 匂おこせよ 梅の花 主なしとて 春を忘るな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동풍에 실려 매화꽃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야 주인이 없다고 해서 봄이 왔음을 잊지 말거라 하였다. 서로 통하는 노래라 할 것이다. 2023. 7. 29.
한국사에도 필요한 도래인의 개념 우리는 일본사에만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한국사에도 "도래인"의 개념이 설정되지 않으면 곤란한 장면이 있다. 한국민족이 형성되기까지, 특히 전국시대부터 진-한-삼국-서진에 이르기까지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주민이 부단히 있었는데, 이를 적당한 개념으로 한국사에서 포용해야 할 시기가 앞으로 반드시 온다. 이를 "식민하러 한반도로 온 사람들"이라고 보니 자꾸 부정하려 하는데, 대륙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대륙으로부터의 동란을 피해 왔고 여러가지 이유로 황해를 건너 들어온 대륙계 이주민은 전국시대 이후 서진대까지 약 600-700년간 끊이지를 않았다. 한국사에서 이를 부정하려 해도 앞으로 유전학적 연구 등에서 이들의 존재는 부정하.. 2023. 7. 29.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백제왕실 계보가 다른 이유는? 뭐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과감히 생략. 왜 개로왕 이후의 백제왕들의 계보가 혼란이 심할까? 이것이 사료의 착란에 의한 오류가 아니라 실제로는 종법 때문일 가능성은 없을까? 아들이 되었건, 형제간 계승이건 아니면 먼 자손의 계승이건 간에 선왕과 새로이 즉위한 왕의 관계는 부자관계로 자리매김되어진 탓에 삼국사기 기록은 부자관계의 수수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없겠는가 그 뜻이다. 구한말 계보를 보면 고종은 은신군 후손으로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인평대군 후손이었다는 말이다. 누구나 고종은 인평대군의 혈연적 후손이었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의외로 고종 계보를 아래와 같이 인평대군부터 그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는 아래와 같이 그린다는 말이다. 삼국사기와 일본측 기록의 백제왕실 계보 차이는 이 때.. 2023. 7. 28.
인상파 이백李白 언젠가 당시는 일본 와카의 선구를 이룬다고 썼었지만, 당시唐詩가 순간을 포착하고 사람의 심리를 잡아내는 수준은 정말 대단하다. 그 미묘한 찰나의 순간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까닭이다. 필자는 당시야 말로 동아시아 낭만파의 선구, 인상파의 남상으로 본다. 멀리는 우키요에도 당시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夜思〉 李白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달이 툇마루를 비추는 밤 이백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는 짧은 순간의 생각을 포착하여 쓴 명시이다. 너무 유명한 시라 해석할 필요도 없다. 우키요에의 한 장면이라 할 것이다. *** 필자가 말하는 당시唐詩의 저러한 특징, 곧 이미지즘은 실제 현대 영시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해, 20세기 벽두 이미지즘 열풍을 일으키며 T. S. 엘리엇을 만든 에.. 2023. 7. 28.
[唐詩] 宣州謝朓樓餞別校書叔雲: 李白 棄我去者 昨日之日不可留 亂我心者 今日之日多煩憂 長風萬里送秋雁 對此可以酣高樓 蓬萊文章建安骨 中間小謝又淸發 俱懷逸興壯思飛 欲上靑天覽日月 抽刀斷水水更流 擧杯銷愁愁更愁 人生在世不稱意 明朝散髮弄扁舟 고민은 칼로 베어도 물처럼 계속 이어지고 술로 시름을 녹이려 해도 술이 깨면 다시 시름은 이어진다. 이 시는 앞쪽에 고민과 시름에 대해 쓰고 중간에 사조루에 대해 읊다가 마지막에 다시 고민과 시름에 돌아오고 있다. 사조루와 고민과 시름은 전혀 별개의 존재 같은데, 누각에 오르는 동안에도 번뇌가 떠나지 않는 모습을 생각의 순서 그대로 적어간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필자는 새긴다. 훙미롭게도 교서 숙운을 전별한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사조루는 전별 때문에 갔겠지만, 이백의 마음 속에는 뭔..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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