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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식민지시대 : 대학령은 왜 중요한가 앞에 글에서 식민지시대 조선과 일본을 결정해 버린 것은 대학령이라 했다. 물론 조선의 교육 문제는 대학수만 적다는 데 있지 않다. 전문학교와 고등학교수도 문제였고 특히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의 대학예과 역할을 하던 시대에 대학이 없으니 고등학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수가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는 일본의 기업들이 고도화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도 서구제국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못 미치던 일본 기업들이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해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학력에 따라 승진의 한계가 정해지는 일종의 "기업골품제"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1905.. 2023. 6. 10.
조선과 일본- 양자간 차이를 결정해 버린 대학령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법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령을 들겠다. 이 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 외에도 다수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학력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 대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1945년 일본이 망할 때까지 조선땅에는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유일한 대학 경성제대는 "대학령"이 아니라 "제국대학령"에 따라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령에 의해 다수의 대학이 만들어진 일본 땅에는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대학령이 발효된 1919년 이후 일본에는 대학 수가 급증했다. 대학령 발효 후 불과 6년 만인 1925년이 되면 5년 전에 비해 대학수와 학생수가 모두 두 배가 불었다. 이로부터 다시 5년 .. 2023. 6. 10.
언덕위의 구름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郎(1923~1996)은의 언덕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이라는 역사소설이 있다. 국내에도 몇 번 번역되어 나왔다고 아는데, 의외로 이 책이 국내에는 일본 극우들의 일제찬양서 정도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글쎄.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여기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 앞머리에 1897년 이전까지의 일본의 교육제도 발전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 책 주인공은 둘이다. 후일 일본육군 장성이 된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る(1959~1930)와 해군 제독이 된 그의 동생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真之(1868~1918)다. 이들의 소년시절부터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학교를 어떻게 들어갔는지, 메이지시대 초기 일본 교육제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었는지 흥미.. 2023. 6. 10.
민립대 설립운동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 현행 교과서에는 1919년 이후 민립대 설립운동은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이후 민립대를 조선인들 손으로 세우려 했는데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대개 요지는 그것인데. 틀린 논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민립대 설립운동의 배경은 필자의 글에서 몇번 지적했지만, 대학령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는 제국대학 이외에는 대학을 둘 수 없었는데 대학령이 발표되면서 사립대학 등의 설립이 허가되어 대학교와 대학생 수가 크게 늘게 되었다. 대학령으로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는 것보다 기존의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학령에 따라 조선에도 사립대학을 두자-. 그것이 민립대 설립운동이다. 그 내역에 대해서는 필자 글에서 몇 번 쓴 것 같으므로 부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 이 민립.. 2023. 6. 10.
일제시대 지식인: [26] 이강국과 [27] 김태준 해방 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한 두 사람에 대해 한꺼번에 살펴본다. 이강국李康國(1906~1957?)은 해방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월북, 미국의 간첩혐의로 그곳에서 처형된다. 보성고보 (1925) -- 경성제대 예과 (1927) --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 (1930) -- 경성제대 법문학부 연구실 조수 (1930-1932) 경성제대 조수 경력 뒤에는 독일 유학 경력까지 있다. 최근 이강국은 남로당 계열을 숙청하기 위한 북한의 조작이 아니라 정말 미국에 고용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전문적인 스파이로 활동해야만 먹고 살 만한 경력은 아니다. 당시로서는 조선인 중 최고 수준 프로필이고 경성제대 조수를 마칠 때까지 단 1년의 공백도 없었다. 해방 이전 저명한 국문학자로 진단.. 2023. 6. 10.
일제시대 조선의 교육제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일제시대 조선의 교육제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것이다. "조선이 1910년 당시 가진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빈약한 교육제도를 만드는 데도 36년이 걸렸다." 과연 그럴까? 없었기는 해방이후 한국이나 일제시대 조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수립후 36이 지난 시점의 84년의 한국 교육제도와 식민지를 경과한 일제시대의 교육제도의 변화를 비교해 보자.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경우 아래에 첨부한 그림은 1872-1880년 연간의 교육제도이다. 뭔가 굉장한 것이 있는것 같지만, 당시 일본에 소학교와 중학교는 이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였고 대학, 고등학교는 없었다. 각종학교가 이제 막 생겨 응시자에게 간단한 시험을 보고 학교 입학을 허가하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일본도 1872-1880년 사이에는 아무..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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