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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병으로 끌려간 양반들이 예비사관으로 있다가 1945년 8월 경에 원래 정식 소위 임관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시기 공통적 증언의 하나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9월 경에 일본군이 해산 하면서 소위 계급장을 주고 해산시켰다는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9月2日:日本政府が戦艦ミズーリで降伏文書調印。GHQ指令第一号(陸海軍解体、軍需生産の全面停止等)が出る。
라 해서 1945년 9월 2일 일본 정부가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과 동시에 연합군최고사령부 (GHQ) 명령 제1호로 일본군 육해군 해체 명령이 하달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중국 방면 등지에서 일본군 해산과 함께 학병들에게 달아주었다는 소위 계급장이 합법적인 소위는 맞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연합군 GHQ에서 1호 명령이 소위 못 받은 사람들 소위 달아주고 해산하라는 일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해산 명령이 나오니까 현지 부대의 판단으로 예비사관 학병들에게 소위를 달아주고 해산을 시킨 것 같은데
그 소위 계급장 자체가 당시 일본의 합법적 정부인 GHQ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합법적인 계급장이 아니었던 듯하다.
학병 출신으로 프로필이 일본군 소위로 되어 있는 경우 과연 그 소위 프로필이 맞을까?
본인도 맞다고 생각했으니 그렇다고 적어놨을 텐데, 필자가 보기엔 제대로 된 소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경우 "학병으로 끌려가 예비사관 신분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술이 가장 정확한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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