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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제시대의 지식인: [30] 현승종

by 초야잠필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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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종 선생은 학병 출신으로 해방 당시 일본군 소위 신분이었다. 

귀국하여 고려대 교수, 성균관대 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노태우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개천공립보통학교 (6년) -- 평양고보, 평양제이중 (1933-1938) -- 경성제대 예과 (문과을류) (1938-1941)-- 경성제대 본과 (1941년 3월-1943년 9월)

선생의 경력에서 경성제대 예과까지는 빈 해 없이 전개되다가 경성제대 본과 졸업을 6개월 당겨 1943. 9월에 하게 된다.

전쟁 말기에 대학과 전문학교 졸업이 6개월씩 당겨진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위 기록에서 평양고보는 평양제이중과 같은 것이다. 3차 조선교육령이 발효되어 평양고보가 중학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평양중을 피해 평양제2중이 되었다.

선생의 기록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학병 기록이 자세하다는 점이다.

현재 온라인에 올라있는 기록을 보면, 

일제에 의해 학병모집 개시 (1943.10)-- 학병 지원서 제출 (1943.11.20) -- 신체검사, 기초훈련 (1943. 12) -- 일본군 30사단 (평양) 입영 (1944. 1. 20) -- 중국 장쑤성 훈련소에서 경기관총 사수로 훈련 (초병교육?) (3-4개월?) -- (갑종?) 간후후보시험에 선발 (1944. 5?) 되어 쉬저우에서 3개월 간부후보생 집합 교육 (1944. 8?) -- 중국 난징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 (1년 교육?) (1945. 8?)-- 일본제국 육군 견습사관으로 임관,  중국 내 독립병단 예하 2소대장 (1945. 8?) -- 종전 후 일본군 해산 시 임관 (1945.9?) 

학병으로 끌려간 후 종전까지 학병 출신들이 거친 과정은 대략 위와 같을 것인데 위 내용은 현승종 선생과 온라인상에 떠다니는 이야기를 종합해 재구성 해 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학병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았다. 

1. 신체검사 기초훈련 
2. 입영 (1944. 1. 20)
3. 초병교육 3-4개월
4. 갑종시험에 합격하면 간부후보생 교육 3개월 
5. 육군예비사관학교 1년 교육
6. 견습사관 임관
7. 종전과 함께 45. 9. 일본군 소위로 임관시킴 

 
문제는 위와 같은 순서가 정확한지 지금까지 나와 있는 여러 기록만으로는 재구성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학병 관련 기록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걸 다 봐야 명확해 지겠지만 시간이 없어 후일을 기약한다. 

육군예비사관학교라고 되어 있는 프로필이 일제 말 많이 나오는데
본인이 자원해 들어간 학교가 아니라 학병으로 가게 되면 훈련받던 사관학교다. 

의사들의 경우 군의학교와 같은 것이라 보면 되겠다. 

이 예비사관학교도 온라인에는 교육기간이 6개월 이라는 설이 있고, 어떤 경우는 1년 이라는 설도 있다. 

육군예비사관학교는 하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여러 개가 있었다는데, 모두 갑종후보생을 훈련하여 장교를 배출하던 기관이다. 

1938年8月 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仙台陸軍教導学校内)
1939年3月 陸軍予備士官学校を盛岡近郊に移転(騎兵第23連隊跡地)
同年  8月 陸軍予備士官学校を盛岡陸軍予備士官学校と改称
      豊橋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豊橋陸軍教導学校〈町畑町〉内、同教導学校は翌年11月西口町に移転)
      久留米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
1940年8月 奉天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
1941年8月 奉天陸軍予備士官学校を久留米近郊に移転、久留米第一陸軍予備士官学校と改称
      久留米陸軍予備士官学校を久留米第二陸軍予備士官学校と改称
      盛岡陸軍予備士官学校を前橋近郊に移転、前橋陸軍予備士官学校と改称
1943年8月 仙台、豊橋、熊本の各陸軍教導学校を廃止
      仙台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仙台陸軍教導学校跡地)
      豊橋第二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豊橋陸軍教導学校〈西口町〉跡地)
      熊本陸軍予備士官学校を設置(熊本陸軍教導学校跡地)
      豊橋陸軍予備士官学校(町畑町)を豊橋第一陸軍予備士官学校と改称
1945年7月 熊本陸軍予備士官学校を津山近郊に移転、津山陸軍予備士官学校と改称
同年  8月 敗戦によりすべての予備士官学校を閉校



정작 현승종 선생이 교육받았다는 중국 난징에 있었다는 예비사관학교는 기록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것 하나 하나가 완벽히 정리되어야 일제시대에 대한 공과의 평가가 이루어질 텐데

기초적인 것 하나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친일 논쟁만 가열되어 있는 것이 학병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공과를 논하고 싶다면, 사전 조사와 공부가 많이 많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생. 학병으로 끌려가 갑종후보가 되면 이 사관학교에 들어가 6개월인지 1년인지 교육받았다고 한다. 교육기간은 증언들 마다 달라 확정할 수 없다.

 
 
*** Editor's Note ***

 
현승종 선생 관련 학력 논란은 이 블로그에 내가 장기간 연재한 것이 있으니, '현승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된다. 이에서 다른 내용과 직접 연동하는 연재는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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