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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과감히 생략.
왜 개로왕 이후의 백제왕들의 계보가 혼란이 심할까?
이것이 사료의 착란에 의한 오류가 아니라
실제로는 종법 때문일 가능성은 없을까?
아들이 되었건, 형제간 계승이건 아니면 먼 자손의 계승이건 간에
선왕과 새로이 즉위한 왕의 관계는 부자관계로 자리매김되어진 탓에 삼국사기 기록은 부자관계의 수수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없겠는가 그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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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계보를 보면 고종은 은신군 후손으로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인평대군 후손이었다는 말이다.
누구나 고종은 인평대군의 혈연적 후손이었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의외로 고종 계보를 아래와 같이 인평대군부터 그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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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아래와 같이 그린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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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일본측 기록의 백제왕실 계보 차이는 이 때문에 발생한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
역사학이 저지르기 가장 쉬운 경우가 바로 이런 때에 해당한다. A라는 사안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 기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서 그것을 사료 고증 혹은 고등 고증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같은 사안에 대한 무수한 견해가 존재하듯이 팩트에 대해서도 상이한 시각이 얼마든 있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증왕 계보다. 지증왕에 대해 삼국사기는 내물왕 증손으로서 아버지는 습보라 하고, 삼국유사는 나물왕 손자인 기보가 아버지라 한다. 둘 중 하나가 틀린 것일까?
화랑세기가 공개됐는데 놀랍게도 두 가지 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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