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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2

왜 잡곡 밭농사에서 논 벼농사로 이행하는가 수도작 이전에 잡곡 농경이 있었다면, 왜 수도작으로 이행하는 것일까? 생산성이 좋아서? 밥맛이 좋아서? 물론 그것도 다 이유가 되겠지만잡곡농경에서 수도작으로 이행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연작에 거의 가까운 농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농학을 배우면 거기서 이야기한다.쌀 농사 특징은 매년 물을 새로 대고 빼고 하기 때문에 잡곡 농경보다 훨씬 토양이 비옥해 지며 생장에 좋지 않은 물질도 빠져나가 잡곡 밭농사와는 달리 거의 연작에 가까운 농경이 가능해 진다. 필자가 하는 소리가 아니고, 현대 농학자들이 하는 소리다. 얼마 전 필자가 자신있게 이야기한 신석시시대 농경론에서 밭농사의 지력 소모 때문에 계속 돌아다니며 경작해야 했다는 것도 필자가 하는 소리가 아니다. 1950년대 이래 식물고고학자들의 소위 통설이다. .. 2024. 9. 9.
해체신서: 범례의 마지막 부분 앞에서 쓴 해체신서 마지막 저자의 범례 끝부분이다. 필자는 우리 글 중에도 연려실기술의 서문이 정말 명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해체신서의 범례도 잘쓴 글이라고 본다. 범례 전문을 읽어보면해체신서 저자의 진심이 전해진다고 보아  여기 그 끝자락을 남겨둔다. 순한문이고 구두점이 찍혀 있어 독해하는 데 많이 어렵지는 않다. 글 중에 "개면목改面目"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해체신서 저자에 의하면, 의학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전통의학과는 다른 사고,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이 책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다른 것은 할줄 모르고 오직 의업이나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일생을 걸었기 때문에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다고 담담하게 쓰고 있다. 2024. 9. 9.
조선은 학자들이 현실 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소위 자칭 학자들이 현실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학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닌 어느 쪽으로 봐도 함량미달인 지식인을 양산했던 것도 17세기 이후 조선이라는 사회를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게 한데 크게 공헌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해부번역서 해체신서解体新書를 쓴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는 그 책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 책(해체신서)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그 면목을 고쳐야 한다. 옛 관습에 빠져 내장과 뼈에 대한 한의학 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다만 의심할 뿐 망설였으니...결국 분명하게 알 수 없었기에 끝내는 지리멸렬하게 되었다....그런 까닭에 진실로 그 면목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오호라! 사람들 중에는 유.. 2024. 9. 9.
일단 때려 부수고 시작한 여말선초의 폐불론 동아시아 역사상 폐불운동은 여러 번 있었다.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불교 전래 이래 심각한 폐불운동이 불과 메이지유신 이후 폐불훼석으로 왔다. 지금 불교 사원이 즐비한 일본을 보면 믿어지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심각하여 이 당시 불타버린 불교사원도 드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교가 동아시아에서 때때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지만 꿋꿋이 버틴 이유에는, 첫째는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종교로서의 기능. 항상 번뇌에 시달리고 홧병에 고통받는 대중이 의지할 종교가 전무했던 당시, 불교는 이 부분을 충족시켜 항상 살아 남았고, 둘째는 그 심원고고한 불교철학 때문으로, 유학계열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철학경지에 도달한 성리학조차 불교에서 상당 부분 그 액시옴을 빌어와야 할 정도로 불교철학은 수준이 높았다. 따라서 일본 역시 폐불.. 2024. 9. 8.
삼정문란은 19세기 위기 원인인가 결과인가 흔히 한국사의 19세기는 위기의 세기로 쓰고, 그 위기의 징후로 삼정문란을 든다. 그런데-. 삼정문란이라는 건 위기의 원인이 아니고 위기가 만든 현상에 불과하다. 이전까지 견고하게 유지되던 전근대적 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삼정이야 문란해지겠지 그러면 온전히 유지되겠는가. 우리보다 훨씬 견고하게 유지되던 에도막부 사회조차 종말기에 이르면 막번체제에 의한 직역제한에서 이탈하여 사무라이 흉내내는 농민이 수두룩했다. 삼정문란은 19세기 위기의 이유가 아니고 어찌보면 이전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징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19세기는 우리 인식처럼 어둡고 문란하고 퇴행적 세기가 아니라 앙샹레짐이 무너지기 시작한 활기찬 시기였을 수도 있다. 19세기 말 그 움직임이 결국 식민지화로 이어지.. 2024. 9. 8.
식민사학이란 무엇인가 조선후기에 대해 냉정하게 보자고 이야기하면 꼭 식민사학이라던가 식민지근대화론이라던가 뉴라이트 등등을 이야기 하는 경우를 보는데 필자는 식근론 뉴라이트 따위는 관심도 없고 그것이 다 맞는다고 생각도 않는다. 한번 보자면-. 식민사학이라는 건 일언이폐지하면, 너는 해도 안된다, 이 돌대가리야! 하고 아예 학생의 의욕을 꺾고자 하는것. 이게 식민사학이다. 반면에 성적이 이러면 너는 대학입시 실패한다.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해결책을 주는 것. 이게 제정신 박힌 사학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전교 꼴찌를 했는데 지금도 충분하고 여기다 조금만 잘하면 일등하겠다고 무작정 대책도 없이 격려하는 것 이게 지금 조선후기를 보는 우리 사학의 시각이다 그 말이다. 물론 이렇게 격려해서 학생이 이후 잘 될 수도 있겠는데, 문..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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