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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2

한국에 복원된 고례古禮가 많은 이유 조선은 중국보다도 복원된 고례古禮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이유는 임란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이 이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성리철학 자체의 발전은 17세이 이후 지지부진했지만 중국유학에서도 공백으로 남은 예학의 발전에 조선유학자들이 이 시기 들어 올인했고 그 결과가 상고시대 존재했다가 사라졌다는 (사실 정말 있기는 있었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많은 고례가 조선에서 수천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 이 고례란 중국의례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이미 실전되었고 그래서 중국에도 참고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조선유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남아 있는 문헌 몇 조각으로 고례의 복원을 시도했는데, 문헌에 남은 것이 별것이 없으니 복원은 논리적으로 최대한 가깝게 복원을 시도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향사례, 향음.. 2024. 9. 8.
사르트르는 핑계다 앞에서 김단장께서 한국학계의 정치 관여에 관련하여 사르트르의 이야기로 문제 제기를 하였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 경우 사르트르는 한국학계의 핑계다. 베트남의 호치민-. 이 사람은 원래 유학자 출신이다. 그런데 졸지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이런 사람이 많다. 유학자로 출발하여 아주 간단히 사회주의자로 넘어간 사람이 동아시아 문화권에는 아주 많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고 하면, 유학의 액시옴에 해당하는 많은 부분이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맹자를 읽은 사람들은 막시즘과 레닌, 마오이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계에서 정치 참여의 논리로 사트르트와 구미 철학의 참여론을 드는 것은 이와 똑같은 주장이다. 사르트르가 더 잘 먹히니 그걸 들고 나온 .. 2024. 9. 8.
식민사학 극복와 조선후기의 재검토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대로정체성론, 탸율성론 등이라면필자의 생각으로는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극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역사에 연구에 의해 된 것이 아니다. 20-21세기 거지국가에서 일약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사가정체성과 타율성론에 대한 생생한 반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본다. 이제는 조선시대와 구한말을 좀 더 냉정히 분석을 시작할 때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과 구한말, 식민지시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변국가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조선이 왕조의 종말기에 망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면, 그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하여 내놓은 것이 역사가의 할 일이라고 본다. 이러한 작업은 필자가 보기엔 자화자찬의 한국사를 .. 2024. 9. 8.
에도시대 학문이 분석되어야 실학의 견적이 나온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에도시대 학문사가 제대로 분석되어야 (난학 포함) 우리나라 실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견적이 나온다. 이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성리학의 황혼에 해당하는 다산이 졸지에 근대적 사상가가 되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다. 실학의 정확한 역사상 포지셔닝은 에도시대 학문분석이 끝난 후에 진행해도 늦지 않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조선후기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2024. 9. 8.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필자가 보건데 조선 성리학이 정점에 이른 시기는 16세기다. 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죽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던 무렵으로 중국주자학과는 또 다른 조선성리학의 특색이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 일본주자학은 이 시기 주자학의 직접적 후예라고 보아도 된다고 보며 이 시기를 정점으로 이후의 조선성리학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했던 이야기의 변주곡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에도시대의 학문은 1700년이 넘어서면서 조선을 완전히 추월했는데 여기에 난학이 더해지면서 메이지유신 전야가 되면 비교 불가능한 수준까지 그 차이가 벌어졌다. 이 학문의 수준 차이가 20세기까지도 내내 유지되었으며21세기 현재 그 차이가 많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다. 2024. 9. 8.
한국과 일본- 근세 지식인 사회의 구조 이건 필자가 이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는데, 현대 한국과 일본의 학계 수준차는 단순히 20세기 이후 한국이 식민지도 떨어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1700년대 이후, 18세기 부터 이미 한국과 일본은 지식인 사회의 수준은 현저하게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학계는 서구학계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국은 조선후기 지식인 사회의 구조, 일본은 에도시대 지식인 사회의 구조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한국학계에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학자의 사회참여의식"과 "자리 좀 잡았다 싶으면 정치판으로 뛰어드는 풍토"다. 이 행태의 기원을 찾아보면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202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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