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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건데 조선 성리학이 정점에 이른 시기는 16세기다.
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죽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던 무렵으로
중국주자학과는 또 다른 조선성리학의 특색이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
일본주자학은 이 시기 주자학의 직접적 후예라고 보아도 된다고 보며
이 시기를 정점으로 이후의 조선성리학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했던 이야기의 변주곡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에도시대의 학문은 1700년이 넘어서면서 조선을 완전히 추월했는데
여기에 난학이 더해지면서 메이지유신 전야가 되면
비교 불가능한 수준까지 그 차이가 벌어졌다.
이 학문의 수준 차이가 20세기까지도 내내 유지되었으며
21세기 현재 그 차이가 많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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