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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4

공민왕과 세종대의 북벌 주황색 부분이 공민왕이 수복한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이 세종대에 완료한 북방영토 사민지역이다. 이 시기가 14세기 후반-15세기 중반에 걸친 시기인데 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영토가 한국사에 추가되었다. 저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혼합농경이 시도되지 않았다면 이 북벌은 실패했을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2천년 지중해 해저를 지킨 스핑크스 2024. 7. 19.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흔히 윤관 북벌과 공민왕-세종의 북벌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자잘한 전략을 빼고 크게 보면 결국 농민의 식민을 바탕으로 항구적인 점령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윤관북벌은 실패하고 공민왕-세종이 북벌은 성공하였는가. 필자는 이 두 북벌의 사이기에 농업기술의 혁신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구체적으로는 무신정권과 원간섭기. 이 시기에 뭔가 농업기술 관련하여 혁신이 있었다고 본다는 뜻이다. 윤관 때는 실패한 북방 지역의 농사가 공민왕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으리라 본다는 뜻이다. 요는 농민이 현지에 착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국 승패를 갈랐으리라 보는데 이 사이기에 무슨 일인가 농업기술 측면에서 혁신적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2024. 7. 19.
일본의 다빈치 홍아미 고에쓰 흔히 홍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悦,1558~1637]는 만능 예술인으로서 자신이 예술인이라는 강렬한 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다빈치"라 불린다. 이 사람 작품을 보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범상찮다는 것을 느낀다.  *** previou article ***  홍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와 일본미 2024. 7. 18.
공부한다고 더 좋아 보이지도 않을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세한도歲寒圖를 보고 감동했다는 분이 많다. 그런데-. 필자는 감동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 그림을 세계사 어느 구석에 어떻게 갖다 끼워야 하는지 솔직히 필자 수준에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혹자는 알면 보이는 건데 너가 무식해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냉정하게 한 번 이야기 해 보자. 세한도-. 잘 그린 그림인가? 아니다. 그러면 그 정신이 문제가 될 텐데. 세한도에 깃든 정신-. 어떤 면에서 대단하다는 것인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 글쎄다. 난 잘 모르겠다. 필자가 드는 생각은솔직히 나는 세한도 좋은지 모르겠더라 하는 것 하나와, 더 공부한다고 더 안다고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냥 무식한 자의 넋두리라고 생각해 주길. .. 2024. 7. 18.
홍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와 일본미 홍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悦,1558~1637.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홍아미 고에쓰다]는 에도시대 초기에 활동한 "예술가"다. "예술가"라고 쓴 것은 본인이 "예술" 비스무리한 것을 한다고 자각하고 활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일본미술사에서 최초의 인물 아닐까. 홍아미 고에츠는 일본에서의 명성에 비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다. 따지고 보면 소위 말하는 "일본미"에 대한 강렬한 자각은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림 도자기 일본도 만들기 공예 등 손을 안 댄 부분이 없다. 2024. 7. 18.
설계도가 한장이었다는 루머가 돌던 관악캠퍼스 앞에서 성냥갑아파트 이야기를 했지만, 산업화 시대, 속전속결 빨리 해치워야 했던 시대. 요즘은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가 보면 멋있는 건물도 많던데 필자가 다니던 80년대에는 관악캠모든 건물이 전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려오는 루머 중에 관악캠 지을 때 건물 도면이 하나였다는 농담도 있었는데 농담같지 않았던 것이 정말로 공대부터 인문대 사회대까지모든 건물이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당시 이 캠퍼스를 지었던 노력을 폄하할 수 있으랴. 없었던 시대의 해프닝으로 기억하면 되는 정도의 일이라 생각한다.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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