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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어느 분이 전화를 주셔서 쓴 글 잘봤다고, 고맙다 전화를 주셨다.
조금 지난 글인데 누군가 내가 당신에 대해 쓴 글이라 해서 보여주어 지금에서야 봤다는 말씀이었다.
변변찮은 글이지만 한 번 공간된 글은 어디선가 누군가는 또 언젠가는 읽기 마련이라
물론 글이란 요물은 양날의 비수라 내가, 우리가 먹을 돼지고기를 쓰는 데도 쓰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앙금을 남기기도 하거니와
이때문에 군사부일체를 표방한 조선시대에도 우암과 명재가 갈라서 옛 스승과 제자가 앙숙이 되어 서로를 향한 칼부림을 하지 않았던가?
내가 쓰는 무수한 글 역시 그러할 것임을 내가 잘 알거니와
특히 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도 마다 않으나 때론, 아니 아주 자주 비수를 휘두르니
그런 나를 향해 칼을 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더 잘 안다.
글이란 말 자체가 긁다라는 말과 어원이 같을 테고 그것이 결국 도구화한 것이 칼 아닌가 하는데 그렇다면 글이 지닌 숙명을 이처럼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 있을까?
왜 글을 쓰는가?
읽히기 위함이다.
공유하기 위함이다.
가장 불행한 글이 아무런 반응도 없고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이요
더 불행한 글은 많이 읽었다는 표시는 나는데 정작 읽은 사람이 없는 글이다.
이 후자야말로 내가 이 시대에 가장 증오하는 글쓰기다.
물론 안다.
그런 얄팍한 sns시대를 기대어 나 역시 이용하며 연명한다는 것을.
각설하고 내가 나름 심혈 기울인 글은 누군가는 어디서건 언제건 읽힐 수 있다.
이 점이 실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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