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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과학 ABC30

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뽕나무 관리 신라장적문서에는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고을 사해점촌을 조사하니, 마을 크기가 5,725보이다. 공연수(호수)는 합하여 11호가 된다. 마을의 모든 사람의 숫자를 합하면 147명이고, 그 가운데 전부터 계속 살아온 사람과 3년 사이에 태어난 자를 합하면 145명이 된다. 정이 29명(노비 1명 포함), 조자가 7명(노비 1명 포함), 추자가 12명, 소자가 10명, 3년간 태어난 소자가 5인, 제공은 1명이다. 여자의 경우 정녀 42명(노비 5명 포함), 조녀자 9인, 소녀자 8인, 3년간 태어난 소녀자 8명(노비 1명 포함), 제모 2명, 노모 1명이다. 3년간 다른 마을에서 이사온 사람은 2명이다. 가축으로는 말이 25마리가 있고 그 가운데 전부터 있던 것이 22마리, 3년 사이에 보충된 말이 3.. 2025. 8. 4.
누에와 양잠은 언제 도입되었을까? 우리는 흔히 비단옷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때문에 양잠과 비단은 농업사회로 진입한 후에도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양잠하고 비단은 생각보다 상당히 일찍한국과 일본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일본에는 말과 소는 없는데,양잠은 했다. 비단옷은 입었다. 이미 서기 3세기에.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말과 소가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양잠은 먼저 그 도작사회에 전해졌다는 것으로 한국도 이 상황을 그대로 도입한다면말과 소가 한반도 남부에 들어온 것을 점토대토기 단계라고 본다면, 양잠은 그 이전에 이미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고,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면, 송국리 단계에 이미 비단옷을 입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양잠은 본격적인 가축사육이 전해지기.. 2025. 8. 4.
여기서 처음 본 누에번데기 사진 좀 전 김단장께서 앙소문화에서 나온누에번데기 본뜬 모형 사진을 올리신 바, 이에 관해서는 필자가 올해 일본의 "동물고고학"지에동아시아 누에생산과 확산에 대한 논문을 청주박물관 이양수 관장님과 함께 펴낸 바 있다. 資料紹介 李 陽洙・洪 宗河・高 アラ・申 東勳 「考古学および遺伝学が究明する東アジアのカイコ飼育の起源と歴史的な拡散過程」이 논문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단생산은 중국에서 시작해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것인데, 최신의 DNA 정보까지 담아 나름 최신 지견을 간추리려 했다. 이 논문의 가장 앞에 부분에는 중국 양잠의 기원을 설명하였는데김단장님 글에서 예를 든 앙소문화의 그 번데기 모형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앙소문화 번데기는 나름 유명하여 중국 양잠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는데문제는.. 2025. 8. 4.
이 블로그 최근 포스팅에 대해 최근 김단장께서 포스팅하시는 글이 고고과학으로 폭주하고 있는 바 필자의 이 포스팅들에 대한 소회를 조금 써보고자 한다. 이 블로그에 포스팅되는 내용들을 보면재미 뿐 아니라 학술적 의미라는 측면에서 둘 다 상당한 의미가 있어필자도 전공연구에서 놓친 새 소식 상당 부분을 여기서 접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적어둔다. 필자의 전공분야는 김단장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룬 주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연구의 요점을 잡아내는게 쉽지 않으리라 믿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 요점이 상당히 정확하게 잡혀 있어이 분 기자로서 30년간 쌓은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겠다. 디테일에 들어가면 물론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니니 잘못 적으신 부분도 있고 또 조금 촛점을 맞춘 부분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논문의 선정과 이를 기사화.. 2025. 8. 3.
에트러스칸, 외치, 그리고 유럽 초기 농경민 최근에 김단장께서 올리시는 일련의 논문들 중 고대 DNA에 대한 연구 상당 부분은 소위 말하는 "유럽인들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이 지역 연구자들의 숙원과 같은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야요이시대에 농경이 본격 시작된 것처럼 유럽도 농경이 동쪽에서 확산되어 들어간 것이 분명한데 이 농경 확산 이전에는 당연히 유럽도 수렵채집이 중심인 사회였다. 그렇다면 이 농경민은 수렵채집민이 전화한 것인가 아니면외부에서 유입된 것인가? 고대 DNA연구가 본격화하기 이전에도 이 문제는유럽고고학계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였고어떤 이는 원래부터 유럽 살던 이들이 농경을 받아들여 농경민이 되었다는 주장을 했고또 다른 이들은 그게 아니라 외부인이 농경을 들고 들어가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이 문제의식자체.. 2025. 7. 23.
한국 청동기사회와 농경 이전에도 한 번 쓴 듯하지만 한국 청동기사회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우리 학계의 정설로 안다. 이런 결론이 내려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논박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면 한국은 왜 같은 신석기시대에 중국에서는 이미 찬란한 황하문명이 싹튼 그 시대에 명색이 우리도 신석기시대라 이름 붙여 놓은 그 시대에 문명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도대체 왜 그렇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고, 여기에 대한 해답은 학계에서 생산해 주어야 한다.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농경이 본격화한다. 도대체 왜 한반도에서는 그렇겠는가 말이다. 이것을 설명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수십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편집자주] *** 조 수수 기장이 나오는 수렵.. 2025.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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