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627 20대 가수들은 자기 노래를 불러야 요즘 프로그램을 보면 20대 가수들이 나와 80년대에 유행한 노래를 부르며심사위원석에는 80-90년대 학번들이 앉아 심사하는 프로가 제법 있는 듯 한데20대들은 자기들 노래르 불러야지이미 저물어 가는 세대의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르며 어필하는 것은음악으로 아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나이 20대는 자기 이야기를 준비해야지 나이 50-60대 영감들 따라 해봐야 거기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처럼 폼들 잡는데아무것도 사실은 없다는 말이다. 멀리 돌아가고 힘드는 것 같아도20대부터 자기 이야기를 준비하는 젊은 연구자야말로 50대가 되면 대성하게 된다. 가수라면, 20대는 자기 노래를 준비해야지 지금부터 준비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자기노래는 못 부르게 된다. 나이 20이면 자기 음악을 해야지 .. 2025. 11. 26. 개와 늑대의 유전계통 앞서 김단장께서 올린 글에 조금 첨언한다. 연구결과는 흥미로운데,이해를 돕기위해 써 보면, 유전계통도를 그려보니 개와 늑대가 완전히 쫙 갈라진 게 아니라 유전그룹(clade라 한다)별로 개와 늑대가 혼재하여 있는 모양이다.쉽게 말해서 유전형 A에 들어 있는 늑대와 개가 있고, 유전형 B에 들어 있는 늑대와 개가 있고, 이런 식으로 혼재해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대개 늑대와 개가 서로 다르므로 유전형 A는 늑대, 유전형 B는 개, 이렇게 갈릴 것 같지만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왜 그런 것일까?이런 현상은 그런데, 하나의 종이 둘로 나뉘어 갈 때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종이 완전히 갈려나가지 않은 상태의 중간단계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보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아래는 회충의 유전계통도이다... 2025. 11. 26. 호적은 문란해진 것이 아니다 타협이 많아졌을 뿐 우리나라 19세기 삼정문란. 이 삼정 문란 자체를 모두 따져봐야 하겠지만그 중 하나로 나오는 예가 바로 호적의 문란.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18-19세기 호적은문란해 졌다고는 해도 그것이 무슨 없는 것 억지로 창작해낸 것이 아니라, 집단과 집단의 이해가 부딪혀. 충돌했을 때 이를 타협하는 방식으로 뭔가 이색적인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보자, 영조 때 균역법이 1850년인가 시행되었는데이 법은 복잡하게 볼 것 없이 지금까지 군포 2필 내는 평민들 부담을 1필로 줄여준다. 이것이다. 문제는 그러면 그렇게 줄어드는 군포를 어디서 충당하느냐 이것인데, 똑똑하디 똑똑한 영조대왕이양반이 내야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양반들에게 군포를 내라고 했다가는 당장 자신.. 2025. 11. 26. 21세기의 대동보는 어떻게 해야 살아 남는가 족보라고 하면 케케묵은 고리짝 유물처럼 인식되는 세상이지만,사실 지금 족보, 그러니까 집집마다 있는 문중 대동보라는 물건은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빠른 집안이 15세기 경, 좀 역사가 있는 집안도 16, 17세기 경이나 되야 족보가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족보라는건 아는 사람 다 적고문중 후손 수단도 제대로 안 되는 터라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족보의 꼴을 갖추기 시작하는건 대략 18세기 중엽 부터인데 이것도 잘나가던 집안이나 그렇지 19, 20세기에야 대동보를 꾸린 일족도 수두룩하였다. 19세기까지도 우리나라 대동보는 서자는 서자로 표시하고 아예 빼버리는 집안도 있었던 바, 족보에 서자 적자 표시 안하기 시작한 것이 일제시대부터이고,깐깐하게 따지던 절차도 없이 문중 후손이라 하.. 2025. 11. 26. 2019년 미국 클리블랜드 워크샵 이번에 청주박물관에서 고고기생충학과 화장실고고학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샵을 했지만 사실 이런 워크샵은 처음이 아니고 2019년에 미국 인류학/고고학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했다. 클리블랜드 미국인류학회/고병리학회에서다. 필자가 주최자 Organizer였고경희대 홍종하 교수가 함께 참여했다. 2025. 11. 26. 시베리아의 겨울 앞 사진의 연속이다. 이때 경희대의 홍종하 교수, 유해감식단의 이혜진 박사와 함께 러시아 북방연구소와 공동으로 시베리아 현지민의 인골 조사를 했다. 2019년 1월의 일이니 지금 7년이 다 되어 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러시아 학자들과의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아마 필자도 다시는 러시아에 연구를 위해 들어갈 수는 없으리라. 죽기전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다시 탈 일이 있을까? 알수 없는 일이다. 사람 일이라. 2025. 11. 26. 이전 1 2 3 4 ··· 4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