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418 노비, 서자, 모칭유학의 이야기가 없는 조선후기사 필자가 볼 때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주인공은 모칭유학, 서자, 노비들이다. 이들이 성장해 나오면서 조선의 강고한 지배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시스템을 지주-전호제라고 보는 것은 조선사회가 자유민을 기반한 양천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19세기 이전에는 이런 시스템이 지배적이었던 적이 없다. 지주-전호제가 조선사회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등장한 것은 호적을 보면 잘해야 19세기 초반 경으로, 그 이전에는 노비사역이 조선사회 생산양식 중심에 있었고, 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양반이었다. 따라서 양반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노비사역이 무너지면서부터이지지주-전호제가 무너지면서부터가 아니다. 우리나라 노비, 서자, 모칭유학은 조선후기 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음이 분명한데도,이들.. 2026. 1. 5. 제도적으로 양산되는 서얼들 여기서 서얼이라 하면 사실 조선후기에 서자와 얼자가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얼자는 당연히 천민으로 자기 아버지의 노비로 가내노예로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평민 처의 자식인 서자의 경우,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복잡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본인은 양반의 후손이라는 강렬한 의식이 있었고, 족보에도 서자라 적힐 망정 이름 석자가 올라가고, 호적에도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름이 적히지만, 대개 일반적인 양반들보다는 하나 아래의 업유, 업무 등 직역을 받았다. 비록 한 단계 떨어진다 해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직역은 유학과 무과를 수련하는 것이 직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당연히 양반 끄트머리에 해당하고, 군역은 지지 않았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들을 향촌중.. 2026. 1. 5. 조선후기-급증하는 서얼들 조선시대 서얼은 안개에 갇힌 산봉우리다. 훨씬 거대하지만 안개 속에 은폐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서얼 숫자는 훨씬 많았다. 왜 그런가-. 서얼은 어떤 이의 아버지의 서자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서자인 경우도 손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며, 증조할아버지가 서자라도 그 증손에 영향이 미친다. 조선후기의 서자라는 것은 중간에 서자가 하나만 끼어 있으면 그 자손들은 그 영향을 받게 되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조선시대 어떤 양반의 적자와 서자는 대략 1:1 정도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아래로 2대, 3대, 4대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자의 차별이 단대에 그치게 되면 1:1은 유지되겠지만, 만약 2대, 3대 내려가도 그 선대의 서자란 신분이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주.. 2026. 1. 4. [연구소식] Nature가 언급한 필자 연구 Nature Science에 국내 연구자들의 원저가 실리는 시대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2026년 새해 Natue 첫 호의 기사에 필자의 그동안 연구가 간단히 언급되었다. 아주 짧게 언급되었는지라, 자랑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선시대 미라 연구를 마무리 해가는 과정에 있는 필자로선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블로그에 간단히 언급해 둔다.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5-04103-3 2026. 1. 4. 절필 이후 필자가 생각하는 바 젊은이들에게 욕먹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하며 글을 쓸 수 있는 한계는대략 75세 언저리가 아닌가 싶지만, 이것도 사실 알 수 없다. 가 본 적 이 없기 때문이다. 또 사람마다 다르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어느 정도 나이에 따른 변화를 체계화할 수 있지만 노화가 시작되면 저 세상가는 순서라는 게 의미가 없어서 몇 살 때 어떤 변화... 이런 추정이 아무 의미가 없고 개인차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대략 75세까지는 어찌 어찌 욕 안 먹으며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름 떼고 보면 글이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 이전에도 당연히 막을 내려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절필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결국은 놀아야 할 것인데,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2026. 1. 3. 고려시대 "군인전"을 받은 사람들은 조선시대 호적의 누구? 조선시대 호적에 보면앞에서도 썼듯이 양반 평민 천민 이런 식으로 쓰여있지 않다. 양반들은 친가, 처가, 외가 모두 8명 조상이 적히고 그리고 그 사람 "직역"이 적힌다. 관직을 받은 경우에는 관직을 적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학, 업무, 업유 등의 직역이 적힌다. 이 유학, 업무, 업유란 앞으로 과거를 볼 몸이시니 건들지 말라 그 이야기이다. 무엇에 대해 건들지 말라는 것일까? 바로 군역이다. 조선시대 호적에는 이런 식으로 양반 직역 외에 평민 직역도 쭉 적히는데 이 평민 직역이란 역졸 같은 직역도 있지만 대개 군역과 관련한 직역을 적어두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수군이라든가 이런 식이다. 이렇게 군역이 부과되면 이 사람은 직접 가서 몸으로 군역을 때우거나 아니면 군포를 2필 내야 했다. 이 평민이 내.. 2026. 1. 1. 이전 1 2 3 4 ··· 7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