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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대후가승軑候家丞이란 무엇인가? 승상이란 무엇인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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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 출토 대후가승 봉니


 
중국이나 한국 가릴 것 없이 丞[승]이라는 말을 쓰는 관직이 아주 자주 보인다.

지금의 국무총리 혹은 재상에 해당하는 관직을 승상丞相이라 했으니, 도대체 이 승이란 무엇인가?

이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저 본래하는 의미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제아무리 시대와 공간이 바뀐다 해도 저 말이 지닌 그 본래하는 뜻에서 그 직무가 벗어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文이라는 말을 썼으면 그가 문관 혹은 야부리로 먹고 사는 사람을 말하지 무관까지 가르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범위로 삼는 한漢나라 시대 저 말이 함유하는 맥락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저 당시 저 말이 어떤 의미로 통용했는지를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전가의 보물 설문해자说文解字를 보면, 저 말을 풀기를 

翊也。从廾从卩从山。山高,奉承之義。署陵切〖注〗

라 했으니, 돕는다는 뜻임을 본다.

더 간단히 말하면 저 말은 보좌한다는 뜻이다.


음영처리한 대후가승 by 박영재



보좌한다 함은 그 보좌를 받는 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보스다.

그러니 丞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떤 보스가 있어 그 보스를 보좌하는 세크레태리 임을 본다. 비서다.

이 비서가 때에 따라선 우리가 말하는 그 비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범위를 더 넓혀 승상도 이에 포함한다.

왜 재상을 승상이라 했는가? 간단하다.

황제를 보좌해서 정사를 편다 해서 그리 이름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승家丞이라 하면 무슨 뜻이겠는가?

어떤 집안을 보좌하는 비서라는 뜻 아니겠는가? 비서 중에서도 우두머리 급 보좌진이다.

전통시대 家는 범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어서 국가 자체를 저리 일컫기도 했으니 저에서 비롯된 말이 국가國家다.

왜 국가인가? 그에는 왕 혹은 황제라 일컫는 주인이 있고, 그가 통치하는 나라는 그의 집안인 까닭이다.

따라서 가승이라 할 때 家는 단순히 틁정한 집안을 뛰어넘는 개념임을 하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저 가승이 제후로 가면, 그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실제 가승은 그런 의미에서 그런 제후를 보필하는 비서진 우두머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대후가승軑候家丞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대軑라는 지역을 관장하는 우두머리 제후, 그가 다스리는 제후국에서 그 제후를 보좌하는 직책을 말한다.

예서 후候는 제후라는 뜻이다. 물론 이 경우 제후는 제후 중에서도 작은 제후다.


음영처리한 대후가승 by 박영재



중국 봉건제에서 그 나라를 國이라 일컫는 큰 제후가 있어 이들을 황제에 견주어 작은 황제라 해서 王이라 했고, 다시 그 큰 제후국 아래에는 작은 제후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을 열후列侯라 한다. 

열후란 작은 제후다. 한나라 시대를 보면 이 열후는 웬만한 고위급 관리는 지나개나 다 책봉되었다, 그래서 열후라 한다.

이런 제후가 얼마나 많았으면 줄[列]을 이룬다 했겠는가?

이들은 군현제 체제에서 대체로 현령 대접을 받았다.

지금으로 치면 기초자치단체 시장이나 군수에 해당한다.

도지사나 광역시장이 큰 제후라면, 그 아래 시장과 군수가 열후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대후가승軑候家丞이라고 하면, 대軑라는 지역 명목상 군주를 보좌하는 재상이라는 뜻이다.이 대軑는 전한前漢시대에 설치된 제후국으로, 장사국이라는 아주 큰 제후국 아래에 있는 작은 제후국이었다. 

그 작은 제후국왕은 장사국왕이라는 아주 큰 제후국왕을 보좌했으며, 이 장사국왕은 중앙의 황제를 보좌했다. 

한데 장사국에서 대후가 차지하는 위치는 막강했다.

왜인가?

그 대 지역을 위임받은 작은 제후국왕이 장사국 승상을 겸했기 때문이다.

같은 열후라 해도 장사국 안에서 위치는 더 컸다는 뜻이다.

장사국 현 혹은 작은 제후국 중에서는 인구도 가장 많고, 그 왕국 중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했을 것이다. 

마왕퇴 무덤 출토품 중에서는 바로 저 대후가승軑候家丞이라는 글자를 박은 봉니封泥가 나왔다.

물품 꼬리표인데, 봉니는 본래 어떤 공물 혹은 공문서가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그 문서를 봉입하고선 그 입구를 틀어막은 진흙 도장이다.

그러니 봉니는 그 자체 信을 바탕에 깔았다. 

이 봉니는 물품꼬리표였다. 목간을 들먹이는 국내외 역사학도 중에서는 하찰荷札이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그것이 무슨 대단한 문건이나 되는양 떠드는 장면을 많이 보는데, 알고 보면 암것도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부의품을 낸다.

지금 한국사회는 돈으로 거의 통일이 되었지만, 전통시대에는 물건으로 많이 갈음했다.

물론 돈이 일찍부터 유통된 중국은 돈도 내기도 했겠지만, 장례에 오죽 많은 물품이 소비되는가?

하다 못해 손님 접대를 위한 젓갈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부의로 쓸 물품을 내놓으면서 이건 대후가승이라는 사람이 낸 것이다는 조의금 방명록, 그보다는 저 정확히는 이건 내가 낸 것이라는 공문 증명 문서가 바로 저 봉니가 달린 물품이었다. 

이 대후가승 봉니에 대해서는 일찍이 다룬 적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되, 이런 배경을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마왕퇴 (10): 인증 도장, 봉니封泥

 

마왕퇴 (10): 인증 도장, 봉니封泥

* 마왕퇴는 문화적 측면은 김단장이 쓰실 것이라 깊이 다루지 않으려 했는데 검토하다 보니 이따끔씩 짧게라도 멘트를 남겨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싶어 이런 것은 함께 다룬다. 마왕퇴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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